계절이 TV채널 바뀌듯 오락가락합니다. 드라마를 보는 거 같습니다. 엊그제까지는 비가 많이 내렸는데 엄천강이 여름 장마처럼 넘쳐 놀랐습니다. 겨울에 강물이 이렇게 불어나는 건 처음 입니다. 지난 주 계속 비가 계속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12월인데 강물이 이렇게 불어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어제는 비대신 눈이 내렸고 오늘에야 비로소 매서운 겨울 날씨입니다. 귀때기가 얼어붙는 추위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지네요. 겨울은 역시 추워야지요. 북극에서 달려온 차가운 공기는 철모르는 장미 봉우리를 얼리고 목련 봉우리를 돌로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엄하게 꾸짖기라도 하듯 혼란스러워 하는 꽃나무들에게 12월의 매운 맛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곶감을 깎는 농부들은 지난 주 내내 곶감 안부를 물으며 보냈습니다. “아제요~ 곶감 괜찮능교?” “여보게~ 자네 곶감은 어떤가? 내는 아직은 괜찮아 보이네만...” 다행스럽게도 정말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곶감 말리기에 최상의 날씨가 되어 다들 웃고 있지만 지난 주 같은 비가 며칠만 더 이어졌어도 십년 전 곶감 대참사를 반복할 뻔 했습니다. 그 때 전국 곶감의 80% 이상이 이상 고온을 견뎌내지 못하고 소똥처럼 바닥에 다 떨어져 붙었지요. 나도 그 해 곶감을 많이 깎았는데 일손을 못 구해 늦게 깎는 바람에 운 좋게 위기를 피해갔답니다. 옛날 겨울 날씨는 삼한사온이라 감을 깎아 처마 끝이라도 걸어만 놓으면 달콤한 곶감이 되었지만 온난화로 지금은 더 이상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한 겨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앞서가는 곶감 농가들은 시설을 현대화하여 어떤 악천후에도 위생적인 고품질 곶감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물론 비용이 더 들어가고 일이 더 힘들기는 하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라 제대로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 해는 원료 감을 보관중인 저온창고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위기가 있었습니다. 임대한 남의 창고라 고장이 난 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감이 많이 물러진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홍시가 되어 깎지 못한 손실도 일부 있었지만 깎은 감은 품질이 차이 나게 좋아 조기 매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곶감을 깎는 원료 감의 상태를 최적으로 만든 뒤에 작업을 하니 품질이 더 좋아졌습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배운 대로 건시만 만들었지 반건시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함양 사람들은 곶감은 건시지 반건시는 곶감이 아니라며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년 전 겨울 이상 고온에 덕장에 걸린 곶감을 일부 냉동실로 비상 피난 시켰는데 그게 어느 순간 맛있는 반건시가 되어있어 더 말리지 않고 그대로 포장해서 판매했습니다. 이것이 뜻밖에도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 뒤로 귀감의 반건시 비율이 점점 높아져 지금은 70%가 반건시로 출하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으라차차~ 위기를 뒤집어 넘기면 새로운 기회가 떡하니 나타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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