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일 영화관에서 본 ‘서울의 봄’이 꿈에 나타나 잠을 설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봄입니다. 아이러니한 봄이네요. 오늘은 역사의 그날 12월 12일. 봄비가 주륵주륵 많이도 내립니다. 눈이 펑펑 와야 할 시기에 어이없게도 비가 이번 주 내내 이어진답니다. 엊그제 뉴스에 두터운 패딩 대신 반팔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보였고 제주 바다에는 거짓말처럼 서핑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온난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성공한 쿠데타가 되어버렸고 농부는 뒤바뀐 계절에 적응해야합니다. 곶감을 말리는 농부라면 이번 주 내내 내리는 비에 계엄이라도 선포해야 할 듯 합니다만 이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귀감 덕장은 다행히 현대화되어 곶감을 한창 말려야 할 이맘 때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일이 좀 많아져 힘들 뿐이지요. 하지만 모든 이웃 곶감 농가가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걱정입니다. 가족노동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소규모 곶감농가에서는 선뜻 시설 투자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시설도 중요하지만 시설을 활용하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도 있어야합니다. 농사꾼은 다들 내가 최고인지라 “여보게 이렇게 하면 설비가 좀 필요하겠지만 날씨가 안 좋아도 안심하고 곶감 말릴 수 있으니 한번 생각해보시게” 하고 권하면 대부분 코로 듣습니다. 심하면 “내가 너보다 더 잘하는데 무슨 잔소리냐”고 역정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엄천골에 살고 있고 나랑 친한 사람이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덕장에 매달려있는 곶감들을 하나씩 따서 맛을 보는데 확실히 먼저 달았던 것이 고급지고 뒤에 매단 것은 달기는 한데 시간이 더 필요해보입니다. 이제 먼저 달았던 순서대로 하나씩 곶감을 걷어 하우스에서 햇볕 샤워를 시키고 예쁘게 담으면 되겠습니다. 함양 곶감 공판장에는 지난주 초매식을 했는데 지난해 보다 경매가가 40% 정도 올랐다고 합니다. 경매 다녀온 강 건너 마을 이장이 경매장을 배경으로 활짝 웃는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좋은 곶감 가격이 얼굴에 반영이 된 듯합니다. 이 가격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귀감도 연중 소매하지 말고 경매에서 한방에 팔아도 될 듯 합니다만 그렇게 해서 오랜 단골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햇곶감은 원가 상승 폭이 워낙 커서 가격을 올려야하지만 귀감은 단골 고객이 대부분이라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자리 수 물가상승은 반영을 해야겠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지만 올해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번 주는 비가 이어져 덕장 일은 없습니다. 벽난로에 불을 넣고 황금고구마나 구워 먹으면 딱인데 날씨가 따뜻해 벽난로에 일주일째 불을 넣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선 개나리가 다시 피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앞마당에 미친(美親) 장미가 꽃봉오리를 맺고 다시 피려고 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되어야하는데 봄여름가을봄 그리고 겨울입니다. 꿈에서나 볼 법한 계절의 쿠데타 12월의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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