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가 시작된 시점에 한덕수 총리가 한 말이다. 과학을 믿어달라고! 총리 말고도 정부 여당에서는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과학을 들먹이며 괴담이라고 몰아붙였다. 당시 몇 차례 대중 강연을 했던 필자 역시 괴담 유포자가 되어 버렸다. 후쿠시마 방류가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글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여러 과학 비전문가들이 주장했던 ‘과학’에 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는 언제나 과학을 믿을 수 있을까?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과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믿음을 줄만한 예측을 내놓고 있는가’와 같은 말이다. 실제로 대다수 과학자들은 연구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믿음을 가진다. 과학자들의 연구 주제는 물론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이해와 예측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들의 사고는 단순화된 가상적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상황 안에서는 우발적이거나 불규칙한 변화의 요인들은 제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정확한 수학적 원리와 법칙을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결국 시간을 초월한 변치 않는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과학 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란 시간을 초월한 변치 않는 그 무엇이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며 양자중력 연구자인 스몰린(Smolin)은 최근의 저서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에서 “우리는 ‘진리’와 ‘정의’를 비시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신, 수학의 진리, 자연의 법칙 등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것이라면 모두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라고 본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행동하지만 비시간적인 기준들에 따라 우리의 행동을 판단”하지만 이를 역설이라 규정하면서 “이 역설의 결과 우리는 스스로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사는 셈”이라고 한다. 결국 “시간과 시간의 흐름은 본질적이고 실재하는 것이며 비시간적인 진리 및 비시간적인 영역에 대한 희망과 믿음은 신화”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모든 것을 시간의 틀 속에서 자신의 진리를 갖추도록 재개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가장 최첨단에 속하면서 역사상 물질세계에 대한 최고 수준의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물리학자가 어떤 학문도 완성될 수 없으며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자신의 노력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오랜 연구를 통해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핵발전소의 핵연료는 정확한 법칙에 따라 분열을 일으키며 여기서 발생한 에너지는 물을 수증기로 바꾸며 이로 인해 터빈을 회전하고 역시 정확한 법칙에 의해 전기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이런 정교한 법칙이 불확실성과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전력차단과 폭발로 인한 파괴, 책임자들의 잘못된 소통 등이 불확실성의 원인이지만 이들을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런 불확실한 변화의 요소들이 언제나 상수로 존재하는 것이 사회이며 자연이다. 정확한 법칙이 불확실성 없이 작동할 수 있으려면 아무도 없는 우주 공간으로 가야한다. 방류된 오염수가 갈 곳은 드넓은 바다이다. 바다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촘촘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소량의 방사능도 먹이사슬 내에 축적될 수 있으며 그 정도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해류의 방향 역시 많은 요인들로 인해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과학을 믿어달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보호해줄 신을 믿어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학은 모든 불확실성을 걷어낼 수 없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최대한의 예측능력을 가지고자 할 뿐이다. 각 개인들이 위험과 행운 사이에서 살아가듯이 사회와 자연도 그러하다. 이것이 우리가 믿어야 할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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