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전설이라 불리는 헨리 키신저는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믿는 정치 현실주의자로 50여 년 전 냉전 시대에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을 열고 데탕트를 이끈 미국의 외교관입니다. 제2차 베트남전쟁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그 전쟁을 종식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고, 99세의 나이에 윤석열 대통령과 국제정세를 논하고 최근까지 중동 전쟁의 해법을 고민하던 “국제분쟁의 해결사” 키신저 박사가 11월 말에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좋아하는 스포츠가 “외교”라고 했다지만 아마도 제일 좋아하는 게임은 “전쟁과 평화”였을 겁니다. 문명 세계에 야만적인 전쟁이 끓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과 미움처럼 국제사회에서의 전쟁과 평화는 아마도 종교와 정치가 없어지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샛별 공주로 불린다는 김주애는 요즈음 가장 핫한 10살짜리 소녀입니다. 그 또래의 일반적인 부녀관계라면 놀이공원이나 가족여행을 갈 텐데 지난해 김정은은 미사일 발사현장에 천연덕스레 어린 딸을 데리고 나타나 전 세계에 그 존재를 각인시켰습니다. 사극 드라마에서 종종 늙은 신하들이 “빨리 후사를 정하셔서 사직을 반석 위에 올리소서!”라며 젊은 왕을 독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984년생이니 어느덧 40살이 된 김정은도 후계자를 정하는 일을 더는 미룰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주애라는 이름을 가진 주민들에게 개명을 강요하고 “전국 어머니 대회”에서의 “어머니가 사회주의의 원동력”이라는 김정은의 교시가 딸의 우상화 작업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기사를 보면 김주애가 김씨 왕조의 4대 세습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 분명합니다. 길게 늘어선 연로한 신하들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가죽 코트를 깔 맞춤해 입고 의젓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기괴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대통령을 영국 왕이 영접하는 장면과 오버랩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무려 75년을 왕세자의 지위에 있다가 영국 역사상 최고령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영국 왕 찰스 3세가 즉위 후 처음 초청한 국빈이 우리 윤 대통령입니다. 두 분이 황금마차를 타고 가는 장면을 보면서 어찌 보면 군주제도 꽤 재미있는 정치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펜데믹에 이어지는 전쟁으로 지구는 신음 중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정치·경제적 위기도 큰일이지만 정작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같은 중요한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국내적으로도 상수가 되어버린 정쟁에 가려진 저출산, 물가 상승, 국제수지 악화, 가계부채 같은 시급한 현안들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남북 간의 9.19 군사합의가 파기되고 휴전선에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보도도 많아졌는데 북의 지도자가 “지금은 전쟁이 나고 안 나고의 문제가 아니고 시점이 문제”라고 위협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와중에 4.13총선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국내외적인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권은 사생결단의 기세이고 언제나처럼 언론은 북치고 장구를 칠 터인데 이번에야말로 민초들은 두 눈 부릅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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