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남계서원 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여강 이창구 선생이 ‘천령의 노래, 묵향을 담다’라는 주제로 서울시 인사아트센터에서 오는 11월22일부터 27일까지 서예전을 개최한다.
이날 이창구 원장의 서예 작품 45여점이 선보일 예정으로 서예계 안팎에서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서예전에 전시될 작품은 옛 함양의 선조들이 남긴 시를 비롯한 함양을 연상시키는 작품들로 많은 함양의 출향인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자극시키는 작품이다.
이창구 원장은 1990년 첫 서예 작품 활동을 시작해 100회가 넘는 서예 단체전에 참가했다. 2020년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첫 개인 초대전을 개최했으며 올해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이 서울에서 열리며 함양군 향우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남계서원 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 선생은 남계서원에 대한 작품 ‘명성’도 함께 전시할 예정이다. 이 작품은 세계유산 남계서원 강학당의 명칭이자 교육 이념으로 중용(中庸)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여강 이창구 선생의 스승으로 꼽히는 소헌 정도준 선생은 축사를 통해 “여강은 서예에 대한 열정과 재주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화기가 넘쳤다”며 “그의 특별한 능력은 자신의 삶의 터전인 고향 함양에서도 발휘하여 민생을 돌보기도 했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강 이창구 선생은 한국미협 함양군지부 회장 및 한국예총 함양군지부 지부장을 역임하였고 제5, 6대 함양군의회 의원 및 의장, 현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계서원 원장 그리고 세계유산9개서원 운영위원회 부원장, 한국의 서원 통합 관리센터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인터뷰> “서예는 붓을 사용하는 예술이기에 매번 다르게 그려진다”
여강 선생의 서예인으로서의 삶은 초등학교 5학년에 참석한 제1회 천령문화제부터였다. 당시 상림일원에서 열린 서예 실기대회에 이 선생이 참석했고 차후 진주 개천예술제, 거창 아림예술제 등에서 활약했다.
이창구 선생은 “어린 나이에 처음 개천예술제에 참석하여 붓을 들고 한글을 쓰고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한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며 “그중 어린 저의 눈에도 유독 잘 적힌 한문이 있었다. 진주고등학교 학생 작품이었는데 굉장히 멋있고 글자에 힘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여러 번 개천예술제에서 입선한 이창구 선생과 함께 매번 입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고등학생은 바로 이 선생의 스승 격으로 불리는 소헌 정도준 선생이다.
여강은 고등학교 이후 잠시 서예를 내려놓고 학업에 몰두했다. 여러 사회생활을 거치며 서예에 대한 감각도 무뎌질 무렵 우연이 참석한 미술전람회에서 기억 속 저편에 머물던 정도준 선생의 대상 수여 장면을 목격한다.
이 선생은 “수상 장면을 보면서 나도 계속 서예를 했다면 대상까지는 못하더라도 입선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또 시간을 흘러 우연히 찾은 인사동 서예 용품 가게에서 정도준 선생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예 스승을 찾기 위해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제게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정도준 선생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그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정 선생을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여강 이창구 선생은 제5대, 6대 군의원 및 함양군의장을 지냈다. 그간 군민들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이젠 나눌 생각이다.
이 선생은 “함양에서 작은 정치를 하며 지역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기에 서예교실을 개최하여 무료로 지역민들에게 재능을 기부하고 싶다. 지금도 문화원에서 작게 서예교실을 개최하고 있다”며 “지금 함양에서 서예에 몸담은 사람들과 함께 추후 기회가 있다면 단체전을 기획하여 함께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예는 예술이기에 만점도 없고 영점도 없다. 붓으로 긋는 획마다 매번 다르며 단순 한지에 그려지는 글이 아닌 한 글자마다 입체감을 보인다.
이 선생은 “서예는 붓을 사용하는 예술이기에 매번 다르게 그려진다. 또한 표현에 따라 선의 굵기도 달라지며 사람에 따라 모양새도 틀리다. 좋은 글은 뼈대가 있는 글로 옛 어르신들은 이를 힘이 느껴진다”며 “작가가 선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수련했느냐에 따라 글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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