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7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두레생협 연합회에서 매년 운영하고 있는 식생활강사양성 심화과정의 여는 강좌를 하고 왔다. 가끔씩 있는 대중 강연은 실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으로 정규 강좌에 비해 즐거운 마음이 든다. 인간에게 먹거리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겠지만 과거와 달리 기후 위기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맞물려있는 지금은 더욱 심각하다. 강의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심각한 상황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결국은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이외에는 별다른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밥이 하늘’이라는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선생의 ‘밥사상’이었다. 해월 선생은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께서 창도한 민족 종교인 동학(東學)의 2대 교주로 수운 선생의 뜻을 받들기 위해 30년 가까운 세월을 끝없는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동학의 교세를 키웠으며 수운이 남긴 글들을 출판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동학을 올바로 공부할 수 있게 한 분이다. 그가 남긴 말씀들이《해월신사법설》에 정리돼 있는데 식생활과 관련된 것이 바로 ‘이천식천(以天食天)’, 즉 ‘어떤 하늘님도 다른 하늘님을 먹음으로써 삶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하늘이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도 하늘님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식생활에 시금석을 삼아야 할 명쾌한 말씀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는 과학자로서 현대 과학의 흐름에 맞추어 이 말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이를 문명의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먼저 생태적 사고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과학의 관점에서 생태적이란 말은 바로 ‘순환(circulation)’일 것이다. 우리의 인체뿐 아니라 생태계, 지구 생물권 전체를 보더라도 물, 산소, 질소 등 많은 물질들이 쉼없이 순환하지 않으면 정체된 그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전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순환 시스템 안에 사는 우리들도 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사고를 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우리가 속한 전체 시스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20세기의 눈부신 문명을 이룩한 첨단 과학기술들은 부분에 대한 이해만으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고 보는 ‘환원주의 과학’으로부터 만들어졌다. 핵발전이란 기술은 결코 핵발전소와 연결된 바다와 도시를 한꺼번에 고려함으로써 생겨난 게 아니다. 오로지 우라늄 핵이 분열하여 발생한 열에너지를 이용해 바닷물을 끓이고 발생한 수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데에만 국한된 기술이다. 물론 이 기술은 매우 정확하고 예측가능하며, 이를 통해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핵발전은 기술 자체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이 기술은 후쿠시마 사고와 이로 인한 해양의 오염, 밀양 송전탑 저지 투쟁 등 발전으로부터 얻는 이득 이상의 피해를 낳았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유사하다. 밥 한 톨도 공장의 기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논에 심겨진 벼는 그 뿌리를 통해 온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한 톨의 쌀에 온 우주의 기운이 담겨있다는 말이 그리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 기운이 실하지 못하면 흉작이 들게 된다. 따라서 밥알 하나를 이야기할 때도 서로 연결된 전체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환원주의 과학을 뛰어넘는 ‘복잡계 과학’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해월의 ‘밥사상’은 지금의 복잡계 과학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와 하나가 되는 모든 음식을 통해 우리는 전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전체가 오염되어 있다면 우리도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해나갈 수 없다. 이것을 어찌 환원과학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단 말인가? 문명의 전환의 중요한 조건은 과학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환원주의 과학을 통해 자연을 깊이 이해했고 또 많은 기술들을 만들어냈다면, 모든 것이 위기인 지금 우리는 삶의 방식의 변화를 넘어 사고 자체를 전환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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