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사랑시러븐 나의 단짝아. 니가 없으면 난 무슨 재미로 사니?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까지 모두 선후배에다 성격 비스무리 취미 비스무리! 다만 키에선 확연한 차이가 나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사람. 그리고 하루에도 열두 번 더 통화하며 친구인 듯 언니인 듯 든든함을 과시하던 내 단짝 언제나 내게 힘이 되어 주는 막내 동생아. 이제는 쪼매 아파서 나보다 굵었던 팔뚝도 나보다 굵었던 허벅지도 가늘어져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늘 밝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니가 대견하다.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지만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함께 하기에 우리는 특별한 인연이지. 사랑하는 아우를 자랑하고 싶고 응원하고 싶은 날. 함께 한 즐거움이 세상에 전해지길 바라며 깊어가는 가을, 곱게 물든 단풍을 보니 너와의 일들이 새삼 떠오른다. 벌써 2년 전이구나.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하지만 천고오비로 살짝 바꾸어도 될 법한 해에 넌 화왕산 억새밭 등산을 제안했고 난 흔쾌히 응했지. 그날 우리를 반기는 화왕산의 기쁨은 충만했던 것 기억하니? 울긋불긋 물든 단풍과 노란 은행잎, 새소리, 바람소리 그냥 힐링 그 자체였다. 비교적 완만한 3코스를 이용해서 오른 정상,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었어. 세상이 내 발아래에 있다는 것, 하늘과 맞닿은 기분, 정상에서 느끼는 기분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간식을 먹고 여유를 부리다가 하산길에 올랐지. 고즈넉한 분위기의 허준 드라마 세트장이 멀리 눈에 들어와 시선을 당겼어. 그리고 만난 화왕산을 대표하는 억새의 고혹적인 몸짓과 노래가 가슴을 뛰게 했다. ‘남는 것은 사진’이라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앞세우며 우리는 정신없이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지. 지금도 가끔 그때의 사진을 꺼내어 본다. 또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양귀비 붉디붉은 세상이었던 작년 5월, 함안 악양뚝방에서의 나비놀이도 잊지 못한다. 이 꽃에 앉았다 저 꽃에 앉았다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어. 마치 나비가 꿀을 찾아다니듯 조금이라도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은 꽃을 찾아다녔지. 우리는 그냥 나비였어 그땐. 두 손을 맞잡고 뱅그르르 돌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두 팔 올려 뛰고 굴리고 달리기도 하며 하하호호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번엔 추억 셋. “화사한 그림이 나에게 다가온다!” 스물 중반 젊은 시절, 교회 방송실에서 아나운서로 봉사하다가 광고회사 사장님 눈에 띄어 성우로 일할 때 내가 했던 첫 멘트 “화사한 봄이 그대에게 다가온다”를 바꿔봤어. 왜냐 하면 작년 봄, 니가 문인화에 입문한지 3개월 만에 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해서 입선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그동안 미술 전시회는 여러 번 가보았고 화가 친구가 있어서 전시회 사회를 봐준 적도 있지만 미술대전 시상식과 병행한 전시회에 참석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1전시실부터 6전시실까지 그야말로 화산화해를 이룰 정도로 그림이 꽉 차 있었지. 여백의 미를 자랑하며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깔끔하고 정갈한 서예와 동양화. 저마다 다른 형태의 그림에 형형색색 칠해져 화사하고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서양화. 모두가 어우러진 환상의 전시회였다고나 할까. 넌 절개와 지조를 대표하는 사군자 중 노란 국화를 그렸었지.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너를 보는 듯 감동의 시간, 멋진 시간이었다. 그 뒤, 서예 대전에서도 조금씩 실력을 나타내며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 참 멋지구나. 조만간 내 시를 붓글씨로 써서 선물로 주겠다던 그 약속 빨리 지켜지길 바란다는 것 기억해라. 살다보니 어느새 중년이지만 새로운 이력을 하나 둘 만들어가는 아우가 참 예쁘고 사랑스럽구나. 니가 내 동생이라서 참 고맙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꽃씨를 뿌리는 일이요 나무를 심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지. 남은 날도 우리 이대로 쭉 함께 하는 거야. 2023년 11월, 빨간 단풍나무 아래서 너의 단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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