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극한 직업’을 재밌게 보곤 했습니다. 고깃배를 타고 파도와 싸우며 힘들게 고기 잡는 어부의 모습이 방영되면 (그래! 극한 직업이야~)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혹은 조선소에서 용접공이 밧줄을 타고 위험하게 유조선을 용접하는 장면이나 무더운 여름 뜨거운 산업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고단한 삶이구나...)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허허 저게 무슨 극한 직업이야?” 싶을 정도로 별로 극한 직업 같지 않아 보이는 꼭지도 보입니다.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 더 이상 방송할만한 소재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채널을 돌리다 ‘극한직업’으로 넘어가면 흥미롭게 보았는데 요즘은 “이제 할 게 없나보다”하며 채널을 돌리기도 합니다. 규모가 있는 찐빵 공장에서 찐빵 만드는 꼭지라든지 만두 공장, 국수 공장, 족발 공장 등등을 소개하면 “세상에 극한 직업 아닌 게 어딨어?”하며 애교(?)로 봐주기도 합니다. 어쨌든 ‘극한 직업’이 인기 프로그램인 건 틀림없습니다. 수년 전 ‘극한 직업’ 인기를 등에 없고 제작된 영화 ‘극한 직업’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지요.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여태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는 명대사는 한 동안 유행어가 되었고 패러디도 많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꿀단진가? 곶감인가? 여태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며 나도 곶감으로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EBS ‘극한직업’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귀감 덕장을 촬영하고 싶다는 겁니다. 감 수확 풍경부터 덕장에 감을 거는 모습까지 찍고 싶다고 합니다. 마침 감 수확이 시작되었고 감을 깎아 덕장에 걸기 시작할 때이긴 합니다만 속으로 슬며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곶감 전업농으로서 이맘때부터 곶감 작업이 시작되어 설날까지 석 달 힘들기는 합니다만 설날 지나고 나면 아홉 달은 정원에 꽃나무 가꾸며 택배로 주문 배송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솔직히 극한 직업으로 방송되기에는 부끄럽습니다. 누군가가 방송을 보고 “곶감 농사 저게 무슨 극한 직업이라고~”하며 코로 웃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감나무 과수원이 2,000평 있기는 하지만 치열하게 농사를 짓지는 않고 곶감을 말리고 판매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건 몰라도 곶감 하나는 잘 만듭니다. 웃으며 거절하려다가 순간 방송 한 번 잘 타면 주문이 한방 터질 수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산청에 어느 농부는 ‘천기누설’에 방송되고 대박이 났다던데... 피디 혼자 딱 하루 촬영한다는데 조금만 수고하면 공짜 광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곶감 농사지으며 힘들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습니다.(감나무 고목에 올라가서 벌벌 떨며 감을 수확했던 기억, 감 상자 나르다가 허리가 삐끗해서 한의원에 침 맞으러 다녔던 일, 힘들게 감을 덕장에 다 걸었는데 일주일간 비가 와서 하늘을 원망했던 기억, 덕장에서 낙상 사고로 발바닥이 분쇄 골절되어 응급실에 실려 갔던 일...) 생각해보니 곶감농사만큼 극한 직업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용감해지는 모양입니다. 잠시 부끄러웠던 감정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작가의 질문에 담담하게 답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새삼 내 나이를 꼽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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