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톱뉴스는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일 것입니다. 하마스의 10·7 테러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만 1300명을 넘어섰습니다. 신문에 큼지막하게 실린 비통해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 저게 바로 세상사는 모습이로구나. 저게 바로 인생이로구나!” 우리 인생길에 항상 기쁜 일이나 즐거운 일만 생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때 생각지도 않던 슬픈 일, 어려운 일들이 우리 앞에 불쑥 불쑥 닥쳐옵니다. 정말 안타깝지만, 이런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한 결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결코 피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시련이 닥쳐올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닥쳐오는 시련 앞에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넉넉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큰 축복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실패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때때로 닥쳐오는 인생의 시련을 어떻게 대처하고 계십니까? 오늘 단상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 보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에 닥쳐오는 시련을 넉넉히 이겨내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란 닉네임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본래 갈대아 우르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초생 달처럼 생긴 메소포타미아 지방(지금의 이라크 남부) 출신입니다. 그것은 고대 문명의 중심지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살던 아브라함이 당시로서는 변방에 해당하는 가나안 땅(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믿음의 결단입니다. 한번 바꿔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라면 선뜻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큰 용기와 믿음이 없다면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믿음의 소유자로 알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땅에 기근이 닥쳐왔습니다. 가나안 땅은 본래 강우량이 부족한 지방입니다. 적절하게 비가 내리면 농사가 그런대로 잘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부족해지면 가뭄이 들고 농사를 망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가뭄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면 농사를 망치고 기근이 닥쳐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만 정작 그에게 닥친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그를 견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러 저리 쫓겨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땅 한 평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가뭄과 기근이 닥쳐왔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우리가 명심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고난과 시련은 늘 있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감안하지 않으면 세상 살기가 정말 피곤하고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영혼의 맷집! 웬만한 고난과 시련이 닥쳐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한 영혼의 맷집, 즉 굳센 믿음이 필요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영혼의 맷집이 좋지 않으면 인생길에서 수시로 닥쳐오는 시련을 버텨내기 힘듭니다. 누구나 겪는 고난의 인생인데 어떤 이는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이를 역이용하므로 더 큰 유익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를 이기지 못하여 낙심하며 쓰러져 패인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온전한 것은 모두가 고난을 통해 얻어집니다. 미국의 존슨 전 대통령은 사람을 채용할 때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출세한 사람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채용을 꺼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너무 쉽게 출세한 사람은 독선적이기 쉬우며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고난을 통해 연단을 받아 인간다운 인간으로 다듬어져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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