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사망 등 연이은 선생님들의 사망사건으로 인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린 교권의 추락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예방할 수 는 없었을까!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을 지도 내지는 훈육할 수 없는 교육현장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상황이 도래했기에 표출된 방식 중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까지 이 사회는 어떤 한 사회현상에 대해 그 누군가가 죽어야만 회자되고 그러다가 미봉책들만 쏟아져 나와 사회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시들어지고 잊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회문제들처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들이 많다. 사후약방문이다. 그런데 처방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잊어지고 시들어져 가고 있다. 이 파장은 다른 곳으로 튀어 정서적 학대에 대한 논란으로 번져가고 있다. 교권 추락의 핵심은 아동학대에 대한 문제가 아닌데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적어도 전문가라면 현상을 좀 곰곰이 살펴보자. 필자가 그 동안 주장해 온 사실 하나는 현재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있는 것은 권리 뿐 의무와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는 곳은 다 무너지고 있다. 교육현장 뿐 만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 심지어는 가장 준엄해야할 사법부도 아이들에게는 대책 없이 무너져가고 있다.
권리지상주의 때문이다. 그 권리를 부여받고 자란 성인이 된 사람들도 이미 사회갈등의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그 갈등의 골이 시간이 흐를수록 극으로 치닫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책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훗날 현재의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그 때 너희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느냐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며 물을 땐 뭐라고 대답할 건가?
따라서 더 극심한 혼란의 세계가 열리기 전에 학대에 대한 기준은 바꾸어야 하고 훈육에 대한 기준은 세워야 한다. 즉 권리 중심에서 책임과 의무도 함께 부과하여야 한다.
한 때의 여론에 떠밀려 졸속으로 혹은 밀실 내지는 일부의 목소리만 가지고 결정하지 말고 신중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보고 학대와 훈육의 구분을 하자.
그래서 부탁한다. 적어도 다른 사회 문제들과는 달리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보고 미래를 고민하며 광장에서 이야기를 하자.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서 생각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이야기도 좋다. 설익은 자신의 생각이 마치 진실이자 만병통치약인양 주절거리는 잘난 입들도 환영한다. 다만 광장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하자. 다시 말하지만 작금의 현상은 교권의 추락도 학대의 예방도 핵심이 아니다. 어떻게 아이들을 건전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할 것인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필자의 입은 이야기 한다. 모두가 자신의 생각은 어떠한가를 이제는 이야기해야 한다.
네 아이 내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은 세상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더 잘 성장하도록 어른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소 의견 충돌이 생기더라도 학대의 기준은 어떻게 재정립 할 것인지 훈육의 기준은 또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책임과 의무는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를 열린 광장에서 만들어 가보자. 아동권리 지상주의에서 책임과 의무가 함께 부과된 그래서 이 땅의 아이들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던져가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하고자 한 이들에 대한 살아있는 자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고인이 되신 선생님들의 영면을 기도하며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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