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은 그 가문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윗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통음식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전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집안의 전통음식, 옛 음식을 전수해 줄 함양의 숨은 손맛을 찾아 그들의 요리이야기와 인생래시피를 들어본다. <편집자말>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 있는 고향 마을에 집을 짓다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개울 사이에 평탄한 지형의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자 함양군 지곡면에 위치한 개평마을은 오백여 년의 시간을 품은 유서 깊은 마을이다. 일두고택에서 지곡초등학교 방향으로 걷다 보면 하동 정씨 종가음식을 소개하는 식당이 있다. 하동 정씨 18대손인 정현영씨는 종가음식을 알리고, 요리법을 전수하고자 2017년 식당을 차렸다. 식당의 주인이자 정여창 선생의 후손인 그는 세월의 흔적이 묻은 손으로 그릇 가득 음식을 담아낸다. 정현영씨는 함양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 진학을 위해 마을을 잠시 떠났다. 방학을 맞아 홀로 밤차를 타고 고향에 올 때면 굴뚝에서 솟아오르던 새하얀 연기가 가장 먼저 보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타지에서 학업을 마치고 결혼할 무렵 다시 마을을 찾았다. 그는 개평마을에서 보냈던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고향에 오면 모든 게 다 용서가 될 것 같고. 어릴 때 봤던 분들이 아직도 살아 계시고. 고향을 생각하면 남다른 마음이 들어요” 나고 자란 고향을 유달리 사랑했던 정현영씨는 2006년, 일두고택과 가까운 곳에 집을 지었다. 어린 시절 정현영씨는 집 주변에 핀 야생화를 가지고 흙장난하던 아이였다. 그는 많은 야생화 중 채송화와 봉숭아, 과꽃과 백일홍을 좋아했다. “꽃을 흙에 놓고 유리를 덮어요. 그리고 흙을 막 묻어. 손으로 흙을 살살 파헤치면 유리에 납작하게 붙은 꽃이 그렇게 예뻤어요” 순수하고도 여린 마음을 가진 그는 눈물이 많은 아이기도 했다. 가족들과 밥을 먹을 때면 어머니와 아버지께 젓가락질이 서툴다고 혼이 나고는 했었다. 서툰 젓가락질로 밥을 먹고, 흙장난하며 꽃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던 소녀는 어느새 자라 종가음식 전수자가 되었다. 눈으로 보고 배운 음식을 손으로 기억하다정현영씨의 음식 솜씨는 함양군에서도 알아봤다. 군에서는 개평마을에 먹거리가 없다는 이유로 정현영씨에게 식당을 차릴 것을 부탁했다. 그는 국수와 같은 간단한 요리를 만들고 싶었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종가음식을 소개하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싶어 탕국과 비빔밥을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수많은 종가음식 중 탕국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탕국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 년 동안 열세 번 제사를 지내며 탕국을 자주 먹었지만, 질리지 않고 매번 맛있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식당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탕국이 생각났고, 그것과 잘 어울리는 요리로 비빔밥을 떠올렸다. “부엌에서 엄마가 요리하면 옆에 서서 눈으로 봤어요” 그의 어머니는 요리할 때마다 딸을 불렀고, 직접 만든 음식을 정현영씨의 입에 넣어줬다. 그는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떠올리며 “그때 어머니 음식을 먹어 봤기 때문에 흉내라도 내는 것”이라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탕국과 비빔밥의 요리법 역시 어머니께 배웠다. 또한 어머니가 요리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지켜보며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음식에 담긴 정직하고도 진솔한 마음도 함께 익혔다. 그의 어머니는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쓰면 자연히 맛있게 된다”며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의 이러한 태도는 곧 정현영 씨의 요리 철학이 되었다. 탕국은 하동 정씨 종가의 제사 음식이자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다. 볶은 잔멸치와 무, 다시마, 말린 표고버섯을 넣어 육수를 끓이고, 말린 피문어 다리와 말린 표고버섯, 건새우, 건홍합, 말린 노가리, 무로 국물의 시원함과 깊이를 더한다. 그는 하동 정씨 탕국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육수를 낼 때 볶은 잔멸치를 사용해 깔끔한 맛을 살리고, 소고기 대신 건해산물을 넣음으로써 깊은 맛을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탕국과 잘 어울리는 비빔밥에는 다섯 가지 나물을 올리고 황백지단과 석이버섯을 고명으로 올린다. 석이버섯은 생소하지만 정성이 많이 드는 식재료다. 높은 산 바위에 붙어 자라는 석이버섯은 가격도 비싸고, 손질하는 데 시간도 많이 들지만 그것이 내는 향이 깊어 정현영씨는 꼭 국내산 석이버섯을 고집한다. 또한 계절마다 다른 녹색 나물을 얹어 봄에는 취나물을, 여름에는 고구마 순을, 겨울에는 시금치를 올린다. 정현영씨는 하동 정씨 종가음식을 “예쁜 음식이 아닌 재료의 맛과 진심이 담긴 진솔한 요리”라고 설명했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그것들을 아끼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하동 정씨 탕국의 맛을 완성하고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전했다. 신선한 재료와 정직한 마음으로 진솔한 음식을 차리다정현영씨에게 요리는 어머니 어깨 너머 배운 정직함이자 고향에 담긴 애정 어린 마음이며 오래도록 전승해야 할 종가의 시간이다. 그는 종가음식을 보전하고 손맛을 전수하고자 막내아들에게 식당을 물려줄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그런 정현영씨에게 “무슨 식당을 물려주느냐”라며 핀잔하기도 하지만, 그에게 식당은 단순히 경제적 이윤을 남기는 곳이 아닌 종가음식을 소개하고 보전하는, 종가와 그의 삶, 개평마을의 시간이 담긴 장소다. “식당 주인이 바뀌더라도 손맛은 여전해야죠” 막내아들에게 식당을 물려주겠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 위로 종가음식을 보전하고자 하는 굳은 마음이 보였다.   길에 핀 꽃을 가져다 흙장난하던 아이는 정성이 담긴 음식으로 가족을 먹인 어머니의 나이를 지나, 손맛과 전통을 전수하는 때에 이르렀다. 넉넉하고 부드러운 심성을 가진 그는 어머니께 배운 “음식의 맛은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라는 철학을 고집하며 손님과 자신 모두에게 진솔하고도 당당한 음식을 선사한다.   김소희 인턴기자   <탕국레시피>   <재료>(육수용) 무 1/4토막, 양파 1/2개, 말린 다시마 8조각, 말린 표고버섯 7알, 볶은 잔멸치 두 줌(건더기용) 무 1/3토막, 말린 표고버섯 7알, 말린 홍합 한 줌, 말린 새우 한 줌, 말린 노가리 2마리, 말린 피문어 다리 2개(간 맞추기) 집간장 1t, 어간장 1t <순서>1. 큰 냄비에 무 1/4토막, 양파 1/2개, 말린 표고버섯 7알, 물 2L를 넣고 센 불에 30분 이상 끓인다.2. 육수가 끓는 동안 건더기용 재료를 준비한다. 무는 얇은 두께와 숟가락에 올릴 수 있는 크기로 썬다. 말린 피문어 다리는 가위를 이용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3. 육수가 끓으면 말린 다시마 8조각과 볶은 잔멸치 한 줌을 넣고 5분 동안 끓인다. 볶은 잔멸치로 육수를 내면 국물이 깔끔하지만, 오래 끓이면 멸치가 퍼져 육수가 텁텁해진다.4. 육수가 모두 끓으면 불을 끄고 건더기를 건진다.5. 냄비에 육수를 붓고, 잘게 자른 무와 말린 표고버섯 7개, 말린 홍합 한 줌, 말린 새우 한 줌, 말린 노가리 2마리, 자른 피문어 다리를 넣고 30분 이상 끓인다. 노가리는 자르지 않고 냄비에 통째로 넣고, 새우는 죽방새우를 사용한다. 보리새우를 넣어 끓일 경우, 국물 색이 탁해질 수 있다.6. 간은 집간장과 어간장으로 한다. 집간장 1t와 어간장 1t를 넣어 간을 맞춘다.7. 탕국은 오래 끓여야 제 맛이 나므로 뚜껑을 닫고 1시간 이상 충분히 끓인다.8. 탕국이 충분히 끓으면 노가리를 제외한 건더기를 건져 그릇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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