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읍내 시장에 들러 얼기미 체 하나를 샀다. 텃밭에서 수확한 참깨며 들깨 같은 곡식을 까불러서 쭉정이나 검부러기를 없앨 요량으로 내친 김에 작은 키도 하나 샀다. 노부부께서 대나무로 손수 만들어 파는 물건에 눈이 갔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가성비 기준으로 요긴한 물건만 장만했다. 막 나오려는데, 필자와 비슷한 생각으로 얼기미를 사러 온 한 분을 만났다. 주말 농장에 꼭 필요한 물건이라 물어 물어서 왔단다. ‘귀농귀촌한 사람이 제법 많은지 종종 얼기미 체 같은 물건을 찾는 이들이 더러 있다.’는 주인 할머니 말마따나 함양이 좋아서 귀농귀촌하거나 일시 거주하는 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반가운 일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산 좋고 물 좋은 함양을 찾은 이들이 증가한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년층 귀농귀촌 못지않게 청년층의 함양 살이 역시 눈여겨 볼 부분이 많다. 특히 함양의 청년 한 달 살기 ‘고마워, 할매’ 프로젝트는 보여주기 식 이벤트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함양 살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청년 만들기 사업으로 선정돼 함양 청년 농업법인 ‘숲속언니들’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다. ‘시골할매’와 ‘도시손녀’의 연결과 공존이 목표다. 농촌 노령 여성층과 도시 청년층이 교류할 수 있는 창구인 셈이다. 뿐만 아니다. 함양에서 지역 기자가 되어 취재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사례다. ‘주간 함양’이 두 차례 진행한 ‘함양에서 기자하기’는 ‘미디어 오늘’에서 취재를 나올 정도로 주목 받고 있다. 외지 청년이 함양에서 지역 기자가 되어 뿌리내린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 아닌가.‘함양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벌써 3차 모집에 이어 9월 중 4차 모집이 예정되어 있다. 모집할 때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 짧게는 2박3일부터 최대 한 달까지 함양 살이 체험을 통해 함양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기대가 크다. 함양은 풍부한 자연환경과 다양한 문화자원을 가진 곳인 만큼 잘만 활용하면 정주인구 보다 훨씬 많은 생활인구 또는 관계 인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여기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국 지자체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주민등록 인구 확충에 혈안이 된 인구정책은 이제 용도폐기 해야 옳다. 모수는 정해져 있는데 ‘밑돌 빼서 윗돌 고이는 격’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생활인구제 도입을 계기로 이제는 생활인구 활성화에 주력해야 한다. 오늘날 인구 개념은 정착뿐 아니라 이동성과 활동성에도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주민등록이라는 공부 위주의 인구체계를 생활 또는 관계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정부차원에서도 유연한 인구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행정안전부가 전국 7개 시군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인구 시범사업과 한국관광공사가 전국 11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디지털 명예주민증 제도는 새로운 지향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근 거창군에서는 3개월 만에 명예 주민증 1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농촌인구 감소 극복 대안으로서 의미가 있다.
함양군에 제안하고 싶다. 함양 한 달 살기처럼 함양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다양한 지역회생 프로젝트 참가자를 그냥 스쳐간 인구로 방치할 게 아니라 이들에게 명예 함양주민증을 부여했으면 어떨까 한다. 이중국적도 흔한 세상에 ‘이중’ 또는 ‘복수’ 주민등록을 못할 것도 없지만, 이는 정부 몫으로 남겨두고 지자체에서 먼저 다양한 형태의 관계 인구를 창출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함양의 상주인구를 웃도는 관계 인구를 창출하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함양시대를 여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함양 살기 참가자나 체험객, 관광객, 함양에 직장을 두고 있는 외지인, 주말 농장 경영주 등 함양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인구를 대상으로 명예 함양주민등록을 부여한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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