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나’라는 실물이 인간 종족의 한 개체로서 누구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가 잠깐 되짚는 시간을 가져 보고자 한다.
현생의 인간들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학적 유전적 근거로서 동일종으로 정의되어 있으므로 필시 나는 호모 사피엔스의 첫 조상에 해당하는 원시 인류와 공통된 인자들을 품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파푸아뉴기니와 같은 원시 부족민과 상당히 유사했을지도 모를 인류의 조상에 대해 ‘나’는 인지적으로 감정적으로 동질감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이성적으로는 나와 그들과의 동질성이 원천적으로 확정된 생물학적 역사적 사실임을 수용할 수는 있겠으나 ‘나’는 그러한 동질성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 경험이나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
한편, 글로벌 시대라 지칭되고 있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지구촌 풍경 속에서 나는 누구와 동질감을 느끼고 있나를 잠깐 살펴보자. 일백년 전 만 해도 세계 곳곳엔 민족의 고유성 또는 민족과 나라 특유의 토속적 영향력이 상당하여 민족간 구별이 분명한 생활 윤리와 의식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각 민족과 나라의 낡아진 또는 잊혀진 전통은 해당 공동체의 생활문화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유산으로 남은 민족 고유의 독특한 옛 문화는 경제활동의 일환으로서 관광 산업의 자원으로 전락되어 있다. ‘나’의 관점에서 보아도 민족혼과 얼을 세우고 이 나라의 체계를 만들었던 옛 주인공들과 나는 너무나 다르게 삶을 꾸리고 있다. 가만히 살펴봐도 그들과의 동질감을 느낄 만한 요소가 내 일상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지금 시대에서는 나와 동질인 사람들이 시간의 수직대에서 즉 조상들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수평대에서 즉 네트워크를 통한 수평적 관계망에서 찾아진다. 지구촌의 어디든 가보라. 어딜 가든 거기엔 비슷한 모양의 옷차림과 음식과 교통수단과 건물의 풍경이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의 그들과 같은 삶을 사는 시대는 교통과 교류에 한계가 있던 옛날의 것이었다. 네트워크를 통한 대중 문화의 교류와 지식정보의 소통과 공유는 바다 건너 만난 적 없는 친구들과 나를 연결한다. 문화 양식과 사고 경향이 서로 닮아져 가고 있다. SNS를 통해 글로벌 수준의 동질감은 더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다.
지구 저편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라떼를 즐기면서 내가 시청하고 있는 유튜브 영상과 넷플릭스를 거의 같은 시간대로 즐기면서 비슷한 생각에 빠지고 비슷한 느낌으로 반응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한 ‘나’라는 개념의 경험체가 그들이기도 하고 그들 중 누군가들이 ‘나’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의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나의 삶이 그들의 삶과 동질의 것임이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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