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다랭이 논의 풍경은 언덕배기에 노란 들국이 피고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일 때가 절정이다. 곡선 논두렁을 따라 누렇게 익은 가을 벼를 보면 눈이 부시다.
잘 여문 벼 이삭은 농부와 자연이 만들어 낸 시간의 결정체이며 예술 작품이고 우리의 생명을 지킬 소중한 양식이다. 다랭이 논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해가 뜨는 매일매일이 정감 있는 풍경으로 보이는 자연의 걸작품이다. 안타까운 것은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이 다랭이 논이 서서히 묵어간다는 것이다. 하기야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는 반듯한 논조 차도 잡초만 무성한 곳이 많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의 시대적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나마 지금의 풍경을 사진이나 기록으로라도 남겨 두는 것이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다랭이 논은 언제부터 만들었을까? 과거 문헌을 참고해 보면 한반도에 인구가 늘면서 평야지의 쌀 생산량으로는 식량이 부족하게 되어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개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두 번째는 국가의 모형이 갖추어진 이후인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지배 계층에게 농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화전을 일구어 연명하면서 농지를 개간했거나, 춘궁기인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방편으로 물길을 낼 수 있는 산골짜기 땅을 찾아 들어가 몇 세대를 거치면서 다랭이 논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는 다랭이 논은 살아 있는 역사의 유물이며 생명의 땅이다. 논 한 다랭이, 밭 한 때기가 조상님들의 땀방울이고 핏방울이다. 기름진 옥토가 되기까지 수천수만 번의 손이 닿은 곳이 다랭이 논이다.
다랭이 논을 만든 시기에 어떤 도구로 어떻게 만들었을지 상상을 해본다. 톱, 곡괭이, 괭이, 삽, 호미, 지게, 정, 망치, 지렛대.... 그리고 소다. 사람의 손과 발과 몸으로만 쓸 수 있는 도구들이다. 논둑으로 쌓을 돌이 부족한 곳에서는 계곡이나 돌산에서 지개로 돌을 지어 날라 쌓는다. 벼를 심기 좋은 땅으로 만들기 위해 높은 지대의 흙을 아래쪽으로 옮겨 평탄 작업하고 바닥을 깊이 파 자갈돌을 캐내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위쪽의 논에서부터 물을 넣을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든다. 힘들여 만든 논이지만 산지의 척박한 땅이 옥토가 되는 데는 수 세대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이러한 다랭이 논은 벼 재배에 대한 제한적 생산 가치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문화적인 가치와 예술적인 가치, 자연 풍경에 대한 정서적인 가치를 두고 유지, 관리해 나가야 한다. 다랭이 논은 도시 근교나 평야지의 논과 다른 가치를 부여하여 경작에 대한 다양하고 차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관광자원관리, 문화유산관리, 농촌경관 유지, 국민 힐링, 국토 이용 효율 제고, 이산화탄소 제거, 지하수 및 홍수방지 담수, 식량안보, 통일 대비 농지보존, 수돗물 수원 저장 등 다랭이 논을 유지시킬 명분은 많다.
아울러 농지로서의 가치도 중요하다. 농지의 감소는 식량 자급률과도 직결된다. `98년 이후 쌀이 21 차례나 초과 공급되어 국내 식량 자급률이 높을 것이라 착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전 세계 7번째 곡물 수입국이며, 쌀을 제외하면 곡물 자급률 3.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21년 국가 식량안보 수준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32위이다. 식량안보의 가장 기본은 언제라도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경작 가능한 상태의 농지 확보이다. 도시의 확장과 공장 건립으로 농지는 더한층 가속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시기에 다랭이 논을 지키는 것은 미래의 자손들을 지키는 것이다. 만약에 경작 가능한 상태의 논으로 유지해 나가지 못한다면 미래의 식량안보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하였지만 각종 정책이나 시장원리를 앞세워 농가에서는 언제나 많은 피해를 감수하며 지내왔다.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시골의 다랭이 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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