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는 모니터로 문서를 보면 어지러워 못 봅니다” 국회 상임위에서 감사원 사무총장이란 분이 의원들의 추궁에 부지불식간 뱉은 말인데 정쟁이 되어 버린 사실관계야 논외로 하더라도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가 국회에서 당당하게 할 말은 아니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행정업무를 혁신하고 대국민 서비스를 고급화하겠다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고위 관리가 전자문서를 못 보겠다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연배가 좀 있으면서 현직에 계신 분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 솔직한 토로(吐露)다. 페이퍼리스란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기존의 종이 문서 기반의 업무를 전자문서로 대체하여 종이 없는 사무실을 지양하는 용어인데 전자책이나 오디오북등이 활발하게 보급되고 관공서에서 전자문서에 서명하는 등 이미 우리 생활 전반에 함께 하고 있다. 문서의 보존관리에만 기관당 매년 1조 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한다는 금융권 역시 모바일 통장을 발행하고 영수증을 모바일로 대체하고 있는데 얼마 전 은행에 갔다가 패드에 사인하는 거로 청구서를 대신하면서 은행에서 전표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디지털혁명이 초래한 페이퍼리스 시대는 높으신 분들에게는 어찌 보면 재앙이다. 어찌어찌해서 컴맹은 면했다지만 누워있는 문서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서 있는 결재문서를 모니터를 통해 열람하고 사인을 하는 일은 절대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종이 문서가 오히려 불편해진 젊은 세대가 그 자리를 대신할 때까지는 전자문서를 적당한 글자 크기로 다시 편집해서 열람용 종이 문서를 따로 만드는 일은 비용과 효율은 그다지 절박하지 않은 관공서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페이퍼리스 시대라고 하지만 종이 문서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경쟁력도 만만치 않아 쉽게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관공서에서 제공되는 모든 행정서비스는 A4용지로 구현된다. 복사지가 귀하던 시절 웬만한 사무실마다 복사기 옆에는 “이면지 활용”을 강조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사이 관공서에 가보면 최신식 컬러복사기 옆에 질 좋은 고급 복사지가 넉넉히 쌓여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A4용지 만능시대를 실감하게 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지난 10년간 우리 함양군청의 종이 사용량은 얼마나 줄었을까? 디지털 정부를 표방하는 정부가 앞장서서 페이퍼리스시대를 선도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중이니 종이 사용량이 대폭 줄어들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두 배 또는 세배 늘었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의 활용과 인쇄 매체의 발달 탓인지 이런저런 보조, 지도, 지원사업이나, 군에서 지원하는 행사결과 보고에 요구되는 종이 문서의 양은 갈수록 늘어나기만 해 보이기 때문이다. 종이의 사용량이 늘어났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공무원들이 그만큼 일을 많이 하고 그 결과 주민들의 편익이 증진되었을까? 아니면 필요 없는 종이 문서를 습관처럼 생산하고 민원인들에게는 불필요한 서류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눈 밝은 관리자가 계신다면 한 번쯤 챙겨볼 일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