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엄마와 모종을 심었다. 귀촌하면서 처음 밭을 가꾸기 시작한 엄마는 어느덧 손끝에 흙 때가 꼈다. 앞으로 평생 농사를 짓겠냐는 내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일흔까지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봄은 일 년에 한 번 오는데 앞으로 겨우 스무 번은 더 심겠니. 그렇게 계산하니 이 봄이, 이 모종이 매년 작물을 키우는 게 참 소중해”
귀촌 4년 차. 네 번째 봄을 맞이했다. 뒤돌면 크고, 뒤돌면 또 큰다. 어릴 때 듣던 말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곁순은 따도 따도 새로 돋고 일주일만 지나도 잎이 손바닥만 하게 큰다. 가끔 본 가지보다 곁순이 더 우량하기도 하다. 예뻐할 틈도 없이 자라다 안심하면 태풍이 오고 시들시들 병이 오고 바람 피해를 본다. 여전히 서툴기만 한 초보 농부라 밭에서 돌아와 투덜거리는 내게 “하여간 무언가를 키운다는 건 그렇지?” 하며 한 마디 건네는 엄마.
문득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 시절 가게에서 밥을 먹다 손님이 오면 뛰어나가던 부모님의 뒷모습을 이제 우리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지난날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소중함을 아는 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대사처럼 ‘행복은 발견한다’라는 말이 맞다. 양파 수확이 한창인 함양의 풍경을 마주하며 그 모든 흙발과 흙손에 담긴 수고를 이해할 수 있고 병들지 않고 잘 자란 배추가 고마우며 바람에 몸살을 앓는 고추를 보살피면서도 그저 고마운 것. 산과 들에 식물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자연 앞에 선 삶이 조금 무거워지기도, 봄과 여름의 색깔이 다르고 여름과 겨울의 바람 냄새가 다른 것도, 벌레는 의외로 친절하다는 사실도 귀촌 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처럼 따뜻한 물에 샤워하기, 좋아하는 노래 듣기, 건조기에서 꺼낸 따뜻한 수건처럼 작은 행복들이 모여 삶을 지탱하므로 행복은 그 크기보다 빈도를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끔 찾아오는 슬픔의 빈틈을 메꾸며 내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음을 상기할 수 있다.
이 농촌에서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봄에서 시작해 겨울로 끝나는 이 계절의 여행에서 즐거움은 모두 과정에 있음을 아는 것. 함께 여름을 이겨내고 열매를 나눠서 가지고 보살피며 밭을 일구는 일은 비단 자연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매년 봄이면 알게 된다. 계절을 체감하고 자연의 피고 짐에 순응하는 일. 도시에서는 계절이나 제철을 체감하지 못한 채 가만히 머물고 싶어도 멈출 수 없이 여행으로 내몰리던 일상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내가 숨을 쉬는 속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삶에 마땅히 필요했던 것임을 이제 안다. 이 시야를 가지려 농사를 배우며 구슬땀을 흘린 모양이다.
지리산을 바라보고 살며 행복을 찾아가다 보면 언젠가 자연의 품을 닮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많은 이가 소소한 발견으로 하루를 채우고 서로에게 촛불을 비춰주며 살아갈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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