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심은 덩굴장미 랩소디인블루가 기대했던 모습으로 피지 않아 동호회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우스개 삼아 올려보았습니다. 생각한 만큼 예쁘지 않다고 어쩌겠어요. 그냥 너스레를 떨어본 거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랩소디인블루가 아니고 다른 아이가 오배송 된 거라고 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랩소디인블루는 희귀한 보라색 장미인데다가 이름이 특별히 마음에 들어 심은 것입니다. 거쉬인의 재즈음악처럼 유쾌하고 예쁜 꽃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를 하며 돌담아래 심고 거름도 주고 덩굴을 유인해주며 정성을 들였답니다. 꽃이 피면 랩소디인블루를 듣게 되리라 기대도 했는데 정말 유감스런 일입니다. 거쉬인의 재즈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꽃이라고 하여 일단 사실 여부를 판매자에게 확인 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블루램블러(바일첸블라우, 바이올렛블루)로 불리는 다른 장미의 오배송 이었습니다. 판매자가 착오로 잘못 수입한 것이라 합니다. 랩소디인블루는 애초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문득 빨간머리앤이 떠올랐답니다. 빨간머리앤 다들 기억하시나요? 초록 지붕 집에 사는 나이든 캐나다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부부가 아니고 남매사이로 기억합니다) 아이를 보육원에서 입양하기로 하고 똑똑하고 착한 남자아이를 부탁했는데 어쩌다가 원치 않는 여자 아이가 오게 되었지요. 입양할 아이에게 일손 도움도 기대했던 아주머니는 “여자 아이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되돌려 보낼 생각까지 했는데 아저씨가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 아이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지 않소...” 오배송 된 블루램블러라는 장미가 빨간머리앤을 소환한 것입니다. 빨간머리앤은 주근깨가 많고 그다지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똑똑하고 활달한 성격의 여자 아이입니다. 빨간머리가 싫다고 우연히 구한 염색약을 몰래 발랐는데 기대와는 달리 끔직한 초록색으로 되는 바람에 머리를 자르고 학교 수업도 빠지게 되지요. 하지만 성격이 워낙 활달하고 긍정적인 앤은 결국 잘 자라서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그래서 문득 빨간머리앤을 떠 올리며 비록 오배송 되었지만 이미 상당히 자라버린 장미를 편견을 가지지 않고 끝까지 잘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실 사진으로 보았던 랩소디인블루는 오배송 되어 크게 자란 블루램블러보다 화색이 더 예쁩니다. 하지만 장미를 키워본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꽃만 예쁘다고 좋은 장미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장미를 평가할 때 색상, 꽃의 크기, 모양, 향기, 가시의 정도, 내병성, 성장 형태 등등 다양한 기준이 있는데 어쩌다가 키우게 된 블루램블러는 매우 건강하며 매력적인 보라색의 작은 꽃이 피는 장미로 가시가 없는 덩굴장미 입니다. 추위에도 강하고 키가 6미터까지 자란다고 하니 내년에는 보라색의 꽃송이가 은하수처럼 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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