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자본주의 시대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확고한 틀을 갖춘 이래로 이제는 전 세계 어느 한 곳도 자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칼 맑스는 자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 결국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 희망했지만 지금까지도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라는 극단적 형태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럼 현대의 경제학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얼마나 잘 예측하고 또 기술하고 있을까? 현재의 주류 경제학은 소위 ‘신고전파 경제학’이라 부르는데 이는 경제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아담 스미스의 ‘고전파 경제학’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국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시장은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연스럽게 안정되며 효율적으로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이 개념을 계승하고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한 케인즈 경제학에 대항하여 등장한 경제학이 바로 신고전학파이다. 이 학파의 중요한 전제는 경제의 행위자라 할 수 있는 인간은 ‘합리적 사고’를 한다는 것으로 시장을 자율에 맡기면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어 경제도 안정된 평형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학파는 어떤 수요와 공급의 값이 평형에 도달한 시장의 수요와 공급 패턴과 일치하는 지를 찾는 작업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은 ‘평형 경제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실제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고 단지 수학적 간결성을 위한 모형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새로운 학파가 나타났는데 이들은 스스로 ‘복잡계 경제학’이라 부른다. 물리학에서 뉴턴의 물리학은 매우 단순한 물질 현상에 국한될 뿐 많은 복잡한 현상에 적용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실제 경제 시스템은 ‘복잡계’에 해당한다. 행위의 주체인 인간은 비선형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신고전학파에서 전제한 ‘합리성’을 갖출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개인들의 행동이 전체를 바꾸고 전체의 변화로 인해 개인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는 피드백(되먹임) 구조에서 개인은 합리적으로 예측된 행동을 할 수 없다. 전형적인 복잡계의 특성인 것이다. 복잡계는 결코 평형상태를 바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앞의 글에서 자세히 소개한대로 복잡계는 새로운 질서 패턴이 나타나고 지속되다가 붕괴되어 소멸되는 역동성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결코 어느 한 평형 상태로 고착되지 않는 ‘살아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1990년대 러시아 시장의 자유화,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등 10년을 주기로 나타났던 세계 경제의 환란은 평형 경제학이란 틀로는 결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평형상태란 어떤 인간도 현재의 행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요인이 없는 조건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결국 극단적인 상황, 복잡계에서 말하는 임계 상황에 대해 어떤 예측도 할 수 없다. 현재 복잡계 경제학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 학자의 한 사람인 브라이언 어서는 복잡계 경제학이 기존의 신고전학파 경제학 안에서의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평형 경제학인 복잡계 경제학의 특별한 경우라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경제학은 바로 복잡계 경제학이며 간결한 수학적 답을 얻기 위해 이러저러한 가정을 붙여 현실과 동떨어진 체계로 나타낸 것이 신고전학파 경제학이다. 이는 정확히 모든 속도의 현상에 대해 성립하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광속에 비해 훨씬 느린 속도를 가정함으로써 친숙한 뉴턴 역학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복잡계 경제학에서 기술하는 경제는 결코 정확히 이미 결정되어 있거나, 예측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유기적이고, 진화함으로써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생물 종들이 생태계와 상호작용하며 안정된 시기를 유지하다가 급작스런 멸종을 맞게 되는 것처럼 경제 시스템도 동일한 과정을 겪는다. 아마도 지금은 자본주의가 생물 종의 급작스런 멸종에 해당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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