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희귀하거나 매우 중요한 물건은 비싼 값을 치르면서도 가지려 합니다. 명작이나 명품은 작가나 장인의 노고와 탁월한 기술에 존경과 감사를 담아 비싼 값을 지불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나 명품 브랜드를 신뢰하고 비싼 값을 요구받아도 그 값을 비싸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세계 3대 패션명품은 루비00, 샤0, 에르00 이라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그 제품들이 왜 그러한 대접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피카소의 그림들을 보면서 왜 피카소의 작품이 그렇게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지 매우 이상히 여겼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변함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오히려 저를 이상히 여길 겁니다. 모든 것에는 그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값으로 매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개의 문재입니다.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도 가치는 존재합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이지만 더 귀하고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름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이름은 매우 중요시 여겨져 왔습니다. 그 이름이 그 삶을 좌우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고민하며 준비하는 것이 아마 이름일 것입니다. 그 아이의 삶에 건강과 행복 그리고 축복이 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너무나 고민한 나머지 이해되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짓기도 합니다. 사회적 이름이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귀히 여겨 지어준 이름입니다. 개인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이름은 더욱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대통령, 국회의원, 경찰관, 선생님, 목사, 스님, 신부, 부모 등등 매우 많습니다. 이 이름에는 매우 귀한 가치와 존경과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이름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존경과 예의를 다합니다. 그 권위에 순복합니다. 이는 그 사람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그 이름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이름의 가치는 어떠합니까? 이전처럼 존경과 감사 두려움의 마음이 있습니까? 감히 욕할 수도 욕해서도 안 되는 소중한 가치의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고 조롱과 비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습니까?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모습이 아닙니까? 선생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공권력은 힘을 잃고,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목사입니다. 어릴 적 이런 예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야 예수쟁이도 그러냐?” 그 말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떤 일에 싸우거나 화를 내고 싶어도, 어떤 것에 욕심을 내려 해도 늘 주위에서 하던 말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향한 그들만의 윤리적 기준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이 그립습니다. 아무도 “예수쟁이도 그러냐?”라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매스컴에서 전하는 공직자의 비리, 성범죄, 경찰의 비리, 폭행, 음주 뺑소니 사건, 종교지도자들의 범죄, 보험금을 타기 위해 부모를 남편을 아내를 자식을 사지로 내몰고 죽이는 사건 등등을 보고 들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이 사회를 지탱해 주는 그 귀한 사회적 이름들이 점점 가치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그 이름에 가치를 부여하려 하지 않습니다, 기대하면 늘 실망하기에 자신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방어기제가 아닌가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말세로 가는 길이요 문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하면서 자신을 또 한 번 돌아봅니다. 나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어떠한 사람인가? 교회의 목사로서 어떤 인정과 판단을 받고 있는가? 모든 사람은 각각 자기의 사회적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존중받고 신뢰받아야 할 이름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 이름에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뼈를 깍는 심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모양을 돌이킨다면 다시금 그 이름의 가치는 세워질 것이고 신뢰받고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정도 직장도 나라도 그 이름 위에 굳건히 세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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