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교양 있어 보이는 젊은 엄마가 꼬마 아이의 손을 잡고 백화점을 둘러보고 있었다. 젊은 엄마는 꼬마를 아주 예절 바른 아이로 교육을 했는지 아이는 엄마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어머니! 나, 이 장난감을 갖고 싶은데… 이거 사주시면 안 되겠어요?” 나이가 일곱 살이나 되었을까? 누가 보아도 무척이나 예의 바른 아이처럼 보였다. 젊은 엄마 역시 말투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꼬마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자꾸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젊은 엄마는 아이가 잘 알아듣도록 차근차근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뭐죠? 우리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장난감을 사러 온 것이 아니죠?” 잘 알아듣게 타일렀는데도 꼬마는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졸라댔다. 젊은 엄마는 아이를 다정하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밖에서 이렇게 자꾸 떼를 쓰면 엄마가 어떻게 한다고 했죠?” 그랬더니 아이가 대답하기를, “죽여 버린다고 했어요!”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엄마는 교양도 있어 보이고 교육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아마 집에서는 ‘죽여 버린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던 모양이다. 교육(敎育)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사람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이다. 분재를 가꾸는 사람들은 나무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꺾기도 하고 굽히기도 해서 꼼짝 못 하도록 철사로 묶어놓는다. 그렇게 해서 나무는 분재사가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진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아이는 백지장과 같아서 아이의 마음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 아이들은 보고 들은 대로 배우고 모방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아이 앞에서는 거친 말을 해서도 안 되며, 함부로 행동해서도 안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엔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또 부부의 날도 들어 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5월이 되면 어디선가 까르르 웃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내 품으로 달려오는 꿈을 꾸곤 한다. 그리고 벌써 서른을 넘긴 작은아들과 손주들을 보면서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년 4월에 결혼을 앞둔 큰 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아직도 4, 5년은 더 공부를 해야 하는 큰아들은 결혼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모양이다. 남들처럼 쉽게 유학길에 오를 수 없었던 것도 가난한 시골 목사를 아빠로 두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결혼과 출산을 앞둔 큰아들이나 두 아들을 양육하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둘째 아들이나 필자에게는 모두 다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지난 30여 년 동안 아비라는 이름으로 자식 둘을 키우면서 좀 더 따뜻하고 넉넉하게 양육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저출산(低出産)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시점에서 출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대부분 한 자녀만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를 자기의 소유물이나 분신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아이를 과보호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서운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는 억압된 감정을 조절할 줄 몰라서 범죄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묻지 마 범죄’가 바로 그것이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이유 없는 반항이 끔찍한 범죄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심한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부모가 저지를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학대는 방임이다.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젊은 부모가 아이를 내버려두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보도라든지 미혼모가 아이를 낳아서 버렸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야말로 어린아이들이 사지(死地)로 내몰리는 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은 실종된 지 오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육아행태나 교육방법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느냐에 따라서 좋은 부모가 되기도 하고 못된 부모가 되기도 하는 법인데, 부모에게 학대를 받은 아이는 학대하는 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 보고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 전에 수년간 진주교도소 정신보건센터에서 웃음치료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받은 재소자들은 무기수들이거나 10년, 또는 20년 이상의 장기수들이었고, 심각한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착해 보이고 순해 보였다. 수십 년을 교도소에서 지내면서 교화된 것일까? 그런데 그들과 교제하면서 알게 된 것은 한결같이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이 그들을 살인자로, 혹은 강도나 성폭력 범죄자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관과 바른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 많아져야 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 등 사랑이 가득한 이 5월에 “사랑밖엔 난 몰라요!”, 이 노래 한 번 불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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