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죽순이 도착했다.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가슴 졸이며 보낸 사흘이 아니던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마시듯 일말의 시간도 주지 않고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따라 칼집을 내고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놀라움과 실망감으로 다음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애인의 얼굴이 아니라 뚱뚱하고 못생긴 정말 이상한 모습의 물건이었다. 그것은 철갑 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처럼 강하고 딱딱해 보이는 팔 길이의 반이나 되는 죽순으로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보였다. 평소에 무엇이든 작고 아담한 크기를 좋아하는 나는 죽순의 크기와 생김새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왕 주문해서 받은 것이니 어쩌랴. 심호흡을 하고 일단 하나를 잡아서 껍질을 벗겼다. 한 겹 두 겹, 까도 까도 껍질이 계속 나온다. 알맹이가 엉성하고 양도 너무 적다. 한 개를 더 까도 마찬가지다. 10킬로를 시켰는데 이렇게 하다간 반도 안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깐 껍질 중에도 부드러운 부분이 많아 이것도 먹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하던 일을 멈추고 손질하는 방법을 물어보려고 생산 업체에 전화를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났다는 안내만 나올 뿐 정작 직원과의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을 시작하는 아홉 시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죽순의 크기와 양에 대한 느낌과 기분을 사실대로 전하고 반품하고 싶을 정도라고 했더니 부드럽게 응대하며 공감을 잘해준다. 편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정리해서 먹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설명 사진을 몇 장 보내주겠다고 한다. 받은 사진의 설명 내용을 따라 밑에 부분을 자르고 죽순의 겉껍질을 어느 정도 깐 다음 세로로 반을 잘랐다. 그러자 안에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애인이 보였다. 내가 알고 있는 죽순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반가웠다. 찜솥을 꺼내어 죽순을 넣고 쌀뜨물과 소금을 넣어서 오래 삶았다. 그리고 조금 잘라서 맛을 보았다. 살강살강 씹히는 식감과 맛이 혀에 와 닿으니 행복감이 사르르 몰려들었다. 당연히 죽순 볶음 반찬과 함께 한 그날 저녁 밥맛은 최고였다. 역시 죽순은 행복을 주나 보다. 난생 처음 생죽순 10킬로그램을 사서 이렇게 큰 일을 치룬 것은 죽순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바로 도파민 때문이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요즘 뇌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신경전달물질이 50여 가지에 달하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7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제일 먼저 언급하고 다룬 것이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동기부여의 원천이며 행복을 만들어 내는 물질이다. 저자는 책에서 도파민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단계별 목표달성을 꾸준하게 반복하는 과정, 운동을 통한 생활습관, 그리고 음식섭취를 통한 방법이다. 앞에 두 가지 방법은 개인의 의지가 많이 작용하는 것이라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내게 꽂힌 것은 음식섭취를 통한 방법이다. 음식섭취는 매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먹는 즐거움이 더해지니 가장 쉬우면서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활력과 행복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직접 만들어 내는 방법은 죽순을 당분과 같이 섭취하는 것이라는 부분에 밑줄을 쫘악 그었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생죽순을 주문한 것이다. 죽순은 요즘 한창 많이 나는 계절이라 제철 식품으로 영양가도 많고 맛도 좋을 것이다. 많이 사서 찌개에 넣어서도 먹고 볶아 먹고 간장에 절이기도 하여 일 년 내내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죽순 반찬을 탄수화물인 밥과 함께 먹으면 딱이리라. 싫든 좋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고 바란다. 이왕이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은가. “오늘 우리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 소포클레스가 한 명언을 늘 카톡 프로필에 넣고 다니는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을 통해 숨 쉴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박완서 작가의 얼굴도 떠오른다. 불쾌하고 짜증나는 날, 안 행복하거나 덜 행복한 날, 더 행복하고 싶은 날, 아니 귀하고 소중한 매일매일 죽순을 먹는 건 어떨까. 도파민 팡팡! 모두가 주어진 소중한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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