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7일 금요일 오전 10시,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적조암에서 유두류록길 답사팀 9명이 독녀암(현재 함양독바위)으로 길을 잡았다. 이 길은 600년 전 함양 군수였던 김종직이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걸었던 옛길로,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폐쇄 되었다가 엄천 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으로 다시 열리게 되었다. 원래 환경부에서 3월에 고시하면 함양군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공단)에서 복원 작업을 하기로 하였는데,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이하 국시모)에서 공단에 검증 답사를 요청하여 고시는 잠시 연기되었고 검증 목적의 산행 팀이 만들어졌다. 국시모측 윤주옥 대표 외 전문위원 2명, 공단 직원 이상운 외 1명, 지역 주민 이재구, 최상두, 박용신, 유진국(기록) 모두 9명이 배낭을 메었다. 산행 전날 종일 내린 비가 당일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아침부터는 화창했고 걷기에 좋았다. 원래 보름 전에 예정된 일정이었는데 우천으로 한번 연기가 되었기에 또 미뤄질까봐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이번에는 날씨가 도와주었다. 국시모에서 무엇을 어떻게 검정한다고 구체적으로 들은 바는 없지만, 국립공원 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시민 단체인 만큼 복원되는 길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옛길인지 그리고 개방 후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지는 않을지 살펴보겠다는 것일 것이다. 취지에 부합하여 지역 주민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길을 걸으며 안전한 길인지, 험하고 가파른 구간을 만나면 대체할 우회로가 있는지 살피며 걸었다. 아울러 멸종 위기 동식물 전문가로 환경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지역주민 최상두가 담비, 오소리 등 야생 동물의 흔적을 전 구간 세세하게 기록했고 필요한 곳에서는 드론을 날려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사월의 지리는 얼레지 천국이다. 걷는 걸음걸음 얼레지를 사뿐히 즈려밟지 않도록 조심해야했다. 무릇 관심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나는 지천으로 피어있는 얼레지, 금낭화, 윤판나물, 미치광이풀 등등을 기록하며 걸었고, 최상두는 담비 똥, 오소리 똥 등 동물들의 배설물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한번은 운서마을 뒷산에서 가끔 만나는 멋쟁이 황금털 담비의 똥이라는 설명에 관심이 생겨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등 뒤에서 누가 “똥은 찍어 뭐하노?” 라며 놀리는 바람에 손이 살짝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재밌었다. 똥만 보고도 담비인지 오소리인지 산돼지인지 알아내다니... 그냥 산죽을 이리저리 덮어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산돼지가 새끼를 키운 육아실임을 밝혀내는 눈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림동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표절해서 <이거 도대체 누구 똥이지?> 라는 동화라도 쓰는 것 같았다. 이맘 때 올라오는 산야초는 나물로도 많이 먹는데 미치광이풀은 맹독을 가진 독초이므로 조심해야한다. 사람이 먹으면 미치광이가 된다고 해서 붙여진 끔직한 이름이지만 겨울잠에서 깨어난 반달곰이 이 풀을 먹고 변비를 치료한다고 하니 독초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실 국시모에서 온 전문위원들이나 지역주민들 공단 직원 모두 이 길을 한두 번 걸은 사람들이 아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상상의 아바타로도 답사가 가능한 사람들이다. 김종직 일행이 말을 돌려보내고 짚신을 신고 지팡이 짚고 올라갔다는 지장사 갈림길에서 환희대를 지나 독녀암까지는 휘파람 불며 한 시간이면 여유있게 올라간다. 팀은 독녀암을 코앞에 두고 잠시 목을 축이며 일반 등산객들이 신열암, 고열암, 의론대, 독녀암을 어떤 코스로 걷도록 길을 연결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의견 교환이 있었는데 조율에 어려움은 없었다. 이번에 복원되는 유두류록길의 백미는 단연 의론대 전망이다. 너럭바위에 올라서서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세 번 하면 즉시 행복해지는 묘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답사팀이 도시락을 어디서 먹을 것인가에 대해서 의견이 갈렸다. 국시모(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측은 상내봉에서 먹는 안을 제시했고 국주모(국립공원 지역 주민의 모임) 측에서는 김종직의 1박지인 고열암에서 먹자고 했다. 국시모 안이 받아들여져 상내봉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며 지역주민들은 (이러다 점심을 벽송사에서 먹게 되겠다~)며 투덜거렸다. 나도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힘들고 배고팠다. 나는 “이 길이 이렇게 힘든 길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힘이 드네?” 하며 너스레를 떨어 한바탕 웃겼다. 김종직이 4박5일 여정으로 지리산 등반을 할 때 그의 나이가 불혹이었는데 명년을 장담할 수 없는 나이라며 결심했다고 한다. “생각건대, 파리해짐이 날로 더함에 따라 다리의 힘도 더욱 쇠해가는 터이니, 금년에 유람하지 못하면 명년을 기약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고 유두류록에 토로하고 있다. 그럼 불혹, 지천명을 지나고 이순에서 고희로 달려가는 나는 명년은 고사하고 다음 달 아니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가 아닌가? 내가 김종직과 같이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는 걸 전제로 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독녀암에서 10년 젊어진다는 안락문 바위동굴을 지나고 상내봉 부처 바위에서 고대하던 공양을 했다. 먹고 나니 내려가는 능선길 진달래가 더 아름다워 보였고 모두들 날개를 펼친 듯 걸음이 빨라졌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 걸으며 뛰며 살짝살짝 공중 부양하다가 두 번 넘어졌음을 고백해야겠다. 한 번은 넘어졌을 때 핸드폰이 떨어지는 것도 몰랐는데 고맙게도 뒤따라오던 일행이 찾아주었다. 엄천 지역 주민의 숙원사업으로 열리는 길이지만 지역민도 아니면서 오로지 산과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길이 열리는데 기여한 사람들이 많다. 너무 많아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 고마운 얼굴을 떠 올려보고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계속 관심 가져 주시고 도와주십사 부탁드린다. 그리고 복원 작업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옛길을 이용하고 자연훼손은 최소화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시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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