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이삭의 우물, 야곱의 우물, 그리고 갈릴리호수, 사해처럼 물에 관한 지명과 역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물은 인간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물이 있는 곳으로부터 문명과 역사가 이루어졌고 그를 바탕으로 강력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물은 사람이나 짐승들의 갈증을 없애주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사람은 몸속에 0.6리터의 물만 부족해도 갈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목마른 상태뿐 아니라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이를 때도 우리는 갈증·갈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도 유명한 구절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옵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上善)은 물처럼 사는 것(若水)’이란 뜻입니다. 물처럼 살다가 물처럼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처럼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을 듯합니다. 혹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도덕경에 따르면 물의 덕은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이롭게 하고, 앞서 가기를 다투지 않으며,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움틉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물을 다스리는 일을 ‘치수’라고 하여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물을 잘 다스리면 나라가 편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편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물은 그저 무심히 흘러갈 뿐입니다. 내가 ‘이롭게 하겠다. 어찌어찌 해보겠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무위자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물이 무심하게 그저 흘러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을 묵묵히 살아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묵묵히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지요. 살면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이유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변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내가 변하는 것이 더 빠릅니다. 내가 변해도 물론 세상은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의 속성을 닮은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끊임없이 낮아지자는 것입니다. 물은 늘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결국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인 바다에 이릅니다. 늘 낮은 곳으로 향했기에 바다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물은 앞서려고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의 근원이 같고 물줄기가 같다면 거의 같은 시간에 바다에 이르러 바다가 됩니다. 서둔다고 바다에 빨리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흐른다고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을 강요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먹는 음식까지도 빨리빨리 속성으로 자라게 합니다. 유전자조작식품(GMO)이 그것이지요.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넣은 가축들 또한 그렇지요. 심지어는 선행학습으로 아이들도 속성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천천히 살아도 빨리빨리 살아도 삶의 시간 이상이나 이하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숨 가쁘지 않게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그 길에서 앞설 수도 있고 뒤처질 수도 있지만, 앞이냐 뒤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물 같은 존재요 바다로 흘러가는 물과 같은 존재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물은 생명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깨끗해야 합니다. 홍수가 나면 제일 큰 문제는 ‘식수’라고 합니다. 물은 많은데 먹을 물이 없지요.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정화되고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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