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뒷길로 계속 올라가면 천왕봉까지 갈 수 있는데...) 지리산 천왕봉을 등반할 때 나는 백무동에서 올라가는 코스를 자주 이용했다. 때로는 성삼재에 주차하고 노고단에 올라 주능선길을 걷기도 하고, 당일코스로는 중산리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가끔 내가 사는 휴천 운서마을에서 천왕봉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왜냐하면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옛날에는 운서 마을에서 천왕봉까지 올라가는 좋은 길이 있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난 뒤 이 길이 인위적으로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산길은 10년만 이용하지 않아도 숲이 되어버린다. 하물며 지리산은 1967년에 국립공원1호로 지정되었고 어느덧 반백년이 지났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숲이 되어버린 이 길은 600년 전 함양 군수였던 김종직이 천왕봉을 올랐던 코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길이 복원된다고 한다. 600년 전 김종직이 지리산 유람 후 쓴 산행기 <유두류록>이 지리산을 사랑하는 <지리99>탐구팀의 십년이 넘는 헌신적인 탐구산행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리99>탐구팀의 회원이자 현재 운서마을 주민인 류정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국립공원공단과 환경부에 김종직이 올랐던 <유두류록> 길을 다시 열어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2019년 가을이었다. 민원은 넣었지만 국립공원내의 산길을 여는 것에 극도로 신중한 국립공원공단과 환경부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냥 찔러본 거지 뭐~” 민원은 마치 어둠에 대고 총을 한방 쏘아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민원인의 생각은 달랐다. 민원을 넣은 류정자는 <유두류록>길을 되찾기 위해 탐구 팀과 함께 10년 이상 헌신했던 답사기록을 책으로 엮어내었다. 탐구팀의 발로 쓴 글이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류정자 지음. 민원을 넣고 1년 뒤에 출간된 답사기록은 반응이 좋아 중쇄를 찍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책 덕분인지 국립공원공단과 환경부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어 연구용역, 공청회, 함양군과의 소통 등등 필요한 절차를 거치면서 <유두류록>길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구간인 함양 독바위까지 복원하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차후 천왕봉까지 결국 이어질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다. 책에서 길이 걸어 나온 것이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있는 옛 길이 류정자의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를 통해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물론 이 길은 김종직의 산행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길이었고, 국립공원 지정이후 폐쇄되기 전까지는 열린 길이었다. 마을 어르신들 얘기에 의하면 일본 강점기 때 일본 순사들도 이 코스로 지리산 등반을 했다고 한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운서마을 뒷길로 올라가는 <유두류록>길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 길이 그냥 밋밋한 산길이 아니고 볼 것과 이야기 넘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지리산꾼들 사이에는 칠암자 순례길로 유명한 길이기도 한데 이미 폐사되었지만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등장하는 암자들이기도 하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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