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신 커피 주이소~” 오늘도 마을 삼촌의 주문으로 카페 아침을 연다. 여기서 아메리카노는 뜨신 커피, 차븐 커피로 불린다. 달달한 커피는 바닐라라떼, 커피 안 들어간 커피는 고구마라떼, 어려운 커피는 아포카토다. “뭐 이른 걸 시키노. 으르운 거 묵는다 참.” 하는 핀잔에 “내 물 줄 안다. 웃지 마라 쫌” 하며 받아치는 말들이 정겹다. 필자는 오도재에서 카페지기로 지내고 있다. 평일 카페 손님 중 절반이 50대 이상인 이곳은 ‘지방 소멸’이나 ‘농촌 인구 소실’ 등이 의미하는 농촌의 끝자락이다. 정부 과제로써 많은 걱정과 지원의 가장 중심에서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다. 멀리 상엿소리가 들리는 어느 아침을 맞이하고 매년 줄어드는 인구와 ‘초등학교 입학생 0명’ 따위의 기사를 접하는 곳. 이 농촌의 사그라드는 불씨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으니, 바로 청년 유입이다. 지역에서는 한달살이부터 100일, 1년까지 체류하며 농촌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청년들의 농촌 이해도가 올라가며 농촌과 도시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4년 전, 함양에 첫발을 내딛던 시기에는 ‘실패자’, ‘부적응자’와 같은 의심과 질문이 따라붙었지만, 점차 시골을 선택하는 청년이 늘면서 긍정적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다.   더불어 지역별로 청년 공동체와 청년 공간도 늘었다. 함양군도 작년부터 ‘이소’ 청년 모임을 시작으로 거·함·산을 비롯한 지역 청년 공동체와 연대 및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니 지금껏 느끼지 못한 젊은 활기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다시 4년이 지난 후에는 얼마나 새로운 농촌이 펼쳐질지, 또 우리의 걸음이 어떤 모습으로 농촌을 물들일지 예측할 수 없이 기대된다. 친한 마을 삼촌들은 “어디 가면 아메리카노밖에 못 마시는데 여기서 이것저것 다 무보는기라. 뭔지 물어도 보고, 우뜨케 뭇는지도 알고!”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응원을 전한다. 친한 마을 이모들은 밭에 다녀오는 길에 고추 순, 마늘종, 대파, 양파, 묵은지 등을 챙겨 “예쁜 색시들 잘 챙기 무라”하며 다녀간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잘하다 굳이, 왜 불편하고 먼 시골로 갔느냐는 물음은 여전히 필자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와 같지만, 그 대답은 늘 같다. 농촌을 선택한 계기였던 <지방 소멸 예측 지도>에서 한반도 절반 이상이 소멸 지역임을 뜻하는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던 것은 위험 신호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것. 주말이면 카페 안은 사투리보다 표준말이 더 많이 들릴 정도로 관광객이 많다. 도농을 여행하고 ‘4도 3촌’, ‘주말농장’, ‘별장’과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은 늘 존재했다. 역사 이래로 농촌에만 사는 농민 없었고, 농사만 짓는 농부도 없었으며 도시에만 사는 도시민 없었다. 생활 공간이 바뀌었을 뿐 살아가는 것은 모두 같으므로 ‘반농반업’이나 ‘귀농·귀촌’의 의미는 본래 존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온전히 경계가 희미해질 날이 머지않았다. 지키는 이보다 떠나는 이가 많은 이 시골에서 살아가는 서른쯤의 카페지기로서 다짐한다. 꼭 지치지 말고 꾸준히 뜨신 커피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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