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오늘 날씨 너무 좋은데 상림공원에 나들이 수업 가도 될까요?”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널린 낙엽을 잔뜩 주워와 맘껏 놀았다. 노는 것도 가르쳐 주어야 하고 놀이 도구도 정해주어야 놀 수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자연을 놀잇감 삼아 자유롭게 즐기고 표현할 수 있게 거들기만 하는 것, 모랑팔레트 허지원 원장은 자신의 역할이 딱 거기까지라고 했다. “미술 수업을 한다기보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아이 스스로 끄집어 낼 수 있도록 필요한 도구를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하는거죠” 앉아서 또는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거나 벽에 물감을 뿌리고 온몸에 물감을 묻혀가며 표현하기, 요리도 하고, 공예도 하고, 화가를 탐구해보는 시간까지... 미술학원 ‘모랑팔레트’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논다. 모랑팔레트 공간에서 허지원 원장이 하지 않는 말은 “이렇게 그려야지” 그녀는 아이들에게 틀에 박힌 것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가장 애쓴다. 의자를 그리기보다 의자에 누가 앉을까를 생각하게 하고 과일을 주제로 정물화를 그릴 때도 과일은 먹고 껍질만 그리기도 한다. “어릴 때 다녔던 미술학원에 샘플북이 있었어요. 오늘 그리고 싶은 것을 고르면 선생님이 스케치를 잡아주고 거기에 색칠을 한 다음 보여드리면 선생님이 고쳐주었던 기억이 나요. 가끔 그런 걸 기대하고 오시는 분도 계신데 전 그런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씀 드리죠” 허지원 원장이 미술학원을 열게 된 것은 그녀가 사용했던 미술도구며 작품을 그대로 보관해 둔 엄마 덕분이다. 디자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대에 입학했지만 취업을 고민했던 그녀가 선택한 것은 건축과로의 전과. 직장을 다니며 잊고 있던 그림에 대한 갈증이 샘솟은 시기다. 화실 겸 학원을 열어 아이들을 한두 명 가르치던 것이 하다 보니 일이 커졌다. 처음엔 학원이 주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도 많이 서툴렀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그녀는 더 많이 배워야 했다. “요리수업은 하면 할수록 점점 아이들의 기대치가 높아졌어요. 그때그때 유행하는 것도 있고 해서 주말에 배우러 갔죠. 그리고 혼자 연습해 보고 아이들이랑 같이 만들어요.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가져가서 자랑하고 가족과 나눠먹는 그 시간이 좋은가 봐요. 부모님도 마찬가지구요” 학원에서 하는 활동은 사진을 찍어 회원관리프로그램을 통해 개인별로 업로드 해 준다. 그 기록들을 모아 사진첩을 만들었다는 부모도 있다. 허지원 원장은 시골이라 경험하기 힘든 문화혜택을 모랑팔레트라는 공간에서나마 아이들이 누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서울행 첫차를 타고 남부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는 허지원 원장. 서울에 자주 올 수 없으니 그날 열리는 전시회가 하나든 둘이든 모두 둘러보고 함양으로 돌아온다. 그날 관람한 전시회는 수업에 접목해 아이들과 나눈다. 어떤 날은 전시회를 연 작가가 되어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학원을 전시회장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최대한 숙지하고 이해한 다음 아이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쓴다. 허지원 원장은 종종 학원 선생님들에게도 전시회 티켓과 협박을 살짝 얹어 선물한다. 의무감에 전시회를 보고 온 다음날 교사들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실린다. “아이들이 백프로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수박겉핥기 식으로 하고 싶진 않았어요. 아이들은 다양하잖아요. 표현이 서툰 친구도 있고 느린 친구도 있고 표현을 두려워하는 친구도 있어요. 아이와 이야기하면서 하나하나 관심사를 찾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 활짝 열리면서 눈을 반짝거려요. 신기해요. 그렇게 변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 놀라워요” 최근 모랑팔레트는 새로 생긴 함양농협하나로마트 2층으로 이전했다. jtbc ‘손 없는 날’에 사연이 채택돼 신동엽과 한가인의 도움을 받으며 이사도 하고 촬영도 마쳤다. 퍼포먼스실, 요리교실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찰 것이다. 매일매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갈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공간 모랑팔레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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