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 함양에 정주(定住)한 지 만 10년이 지났습니다. 이런저런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인생은 해석”이란 게 필자의 지론인지라 함양으로의 귀촌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설픈 농사 흉내를 내며 물, 바람, 풀하고 싸워도 보고, 귀농인들의 어려움을 목도하면서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귀촌인으로 살아보기로 했는데, 자연과 더불어 산다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낯선 곳에서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된 셈인데 고등학생의 취업 지도를 시작으로 초등학교 방과 후 선생님도 해보고 축제나 체육 단체 일에 관여하면서 무슨 국장, 전무, 사범, 감독 같은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 것은 전적으로 귀촌의 결과였습니다. 어쩌다 보니 주간함양에 칼럼이라는 것도 쓰게 되는 일도 생겼습니다. 서울내기가 살아내는 함양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딴에는 “쓴소리”랍시고 쓰면서도 당치 않는 자기검열?을 하는 자신을 보며 혼자 웃은 적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강산도 변한다는 10여 년을 견뎌냈으니 “이제 내도 함양사람이데이”라고 주장하며 조금은 함양을 아는 체하고 때로는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함양은 정말 살기 좋은 고장입니다. 정갈하고 고고한 함양에 수준 높은 행정이 펼쳐진다면 정말이지 금상첨화일 겁니다. 50년 넘게 한 도시에 살았어도 동장이나 구청장 이름 하나도 기억하는 이가 없을 정도로 관청은 저의 삶과 무관했습니다. 민원을 처리할 일이 있어도 담당자가 누군지 궁금한 적이 없었는데 이곳의 생활이나 생업은 왜 그렇게 관에 부탁하거나 신청하거나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많은지, 모든 일이 행정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아 영 불편?합니다. 비가 와도 군청, 눈이 와도 면사무소, 어찌 보면 자질구레한 일까지 관이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정말 수고가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어 심사, 선정, 지원, 교육, 감독, 감사 등의 권한을 가진 공무원들이 부럽고 어려워서 솔직히 공무원들이 “갑”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지방자치를 하는 것 아닐까요? 관이 군민을 “을”로 여기는 일이 없도록 행정의 최고 책임자를 그리고 지방의회 의원을 군민이 직접 선택하게 하고 4년마다 평가하게 하는 민주주의의 “끝판왕”이 지방자치제도이고 그 결정체가 민선 군수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제가 본 군수님들은 선출된 것은 분명하지만, 승진해서 그 자리를 차지한 공무원들에게 둘러싸인 공무원들의 우두머리로만 보였습니다. 편견일까요? 선출직과 임명직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야 할까요? 지난 10년, 우리 함양에서 민선 자치단체장이기에 가능했던 업적이나 변화를 꼽는다면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요? 크고 작은 행사나 의전 때문에 군수가 일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 또 회자됩니다. 실제로 지역신문을 통해 접하는 군수의 동정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우선은 수행원은 딱 한 명만 데리고 현장에서 진지하게 군민의 의견을 듣는 군수님을 기대해 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방의회의 기능과 역할입니다. “제도나 규정을 바꾸고 서비스를 강화하면 국민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편리함을 누릴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이나 공무원의 입장에서 편리한 쪽으로만 시행하는 것”을 행정편의주의라고 합니다. 인구는 일개 동(洞)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행정구역은 서울보다도 넓은 함양에서 행정에 만능(萬能)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 덩달아 행정편의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의원님들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합니다. 현장에서 행정서비스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셔야 합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새해에는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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