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이번 지방소멸 대응기금 사업에서 가장 높은 A등급으로 책정되어 210억의 기금을 확보했다. 함양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많은 예산을 확보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소멸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세대의 인구감소와 유출, 일자리 부족 등 함양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막막할 정도로 산적해있다. 청년인구를 유입시키고 유출을 막는 것은 우열을 가릴 것 없이 시급한 문제다. 청년세대는 인구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세대다. 현재 함양군뿐만 아니라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세대를 유입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혹자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인구 유치를 위해 힘쓰는 사태를 보며 지방을 찾아온 청년들이 힘든 일을 싫어하고 지원금만 밝힌다며 비판한다. 정말 청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환경에서 청년들이 행복하게 정착할 수 있을까? 이에 본지는 이미 함양에서 살고있는 청년의 삶 속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 청년들이 함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존재도 모르던 함양에서 10년째 딸 넷 육아 중인 32살 청년수수하게 웃으며 “내가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대상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엄미현씨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해 보였다. 가치 있는 것을 가진 자만 보일 수 있는 행복이었다. 그녀가 가진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현재 남편과 함께 수동에서 사과 과수원 ‘잘생긴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엄미현씨는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중학생 시절부터 농부가 되어보고 싶다는 꿈을 품은 채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진학했다. 채소학과에서 공부를 한 엄미현씨는 같은 대학교 과수학과를 다니던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 뒤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의 고향인 함양까지 오게 됐다. 올해로 함양에 삶의 터전을 꾸린지 10년 차가 된 엄미현씨. 그녀에게는 보물 같은 네 명의 딸이 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함양이란 지역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존재도 모르던 함양에 10년째 살고 있네요. 거의 제 10년을 육아로만 보낸 것 같아요” 아이가 생기기 전과 후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생긴 아이에 힘들거나 속상하진 않았냐는 질문에 엄미현씨는 웃었다. “원래 다 이렇게 사는 건 줄 알았어요. 그냥 원래 다 이렇게 힘든 거라고요. 그렇게 그 시절에는 인식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대학 동기 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이 있으면 애를 데리고 나갔다. “남편이 대전까지 데려다 주면 기차를 타고 서울에 모임에 나가고 그랬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조금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아이가 있으면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도 모르고 관심사나 대화 주제도 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은 친구들이랑 놀기 위해 모였는데 아이에게 배려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고요. 왜냐하면 걸음 속도부터 전부 다 아이에게 맞춰야 하거든요. 20살 초반 애들이 만나면 뭐 하겠어요. 그냥 밥 먹고 술 먹으니까. 저는 카페나 음식점에만 잠깐 들러 친구들이랑 인사하고 그랬어요. 나중에는 그런 자리가 재미가 없었어요. 가는 것도 힘들고. 그래서 그냥 함양에서 쭉 있었어요. 지금은 이제 관심사나 처지가 비슷해져서 재밌을 수도 있겠네요” 엄미현씨가 보내는 함양에서의 삶을 정리하자면 ‘뭐든 남편과 함께’다. 아직도 제일 친한 친구가 남편이라는 엄미현씨는 무슨 일이든 남편에게라면 다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솔직히 저는 남편 하나만 보고 함양에 온 거예요. 남편이 저에게 정말 잘 맞춰줘요. 그래서 친구들을 못 만나도 견딜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엄미현씨가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수동의 사과과수원 ‘잘생긴 농장’은 뭐든 이름 따라서 간다는 믿음으로 만들게 되었다. 잘생긴 농장은 5천 평 규모의 과수원으로 홍로와 부사, 아오리 사과와 사과밭에서 나온 꿀을 생산하고 있다. 육아와 과수원일에 10년 차가 되고서야 여유가 조금씩 생긴다는 엄미현씨는 이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보고 싶단다. “저는 농업에 대한 꿈을 이제 펼쳐나가고 싶어요. 저만의 농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아직 있어요. 온라인 직거래도 더 신경을 써서 완성하고 싶고 상품도 개발해보고 싶어요. 제가 채소전공이다보니 쌈채소 농사도 해보고 싶어요. 꿀의 부산물이 정말 많거든요. 화분, 밀랍,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꿀. 잘생긴농장 사과밭에서 나온 꿀을 소재로 체험 농장을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많아요. 저는 이제 시작이고 전부 도전이라 긴장되지만 설레는 마음이 커요”   함양? 큰 욕심이 없다면 육아에 적합해요.육아 10년 차 네 딸의 엄마 엄미현씨. 육아를 하기에 함양이 적합하냐는 질문에 엄미현씨는 “큰 욕심이 없다면 나쁘지 않아요”라고 의외의 대답을 했다. “함양의 사회복지관과 도서관에 아이를 위한 무료 프로그램도 많고 문화예술회관에 공연과 전시도 있어요. 함양은 출산장려금이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더 많이 나오는 편이고요. 함양이 분만취약지역이기 때문에 임산부바우처가 20만원 더 지원되고요. 다만 의료서비스가 살짝 아쉽지만,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찾아가는 산부인과도 있어요”   엄미현씨는 함양 자체에 대한 장점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도시에서 자란다면 자연체험이나 밭 체험을 위해 애써서 시간을 내야 했겠지만 함양에 있으면 자연과 가까우니까 좋아요. 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끼며 지낼 수 있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지내는 어른에게도 좋아요” 또 함양에서 아이를 키우면 안전한 느낌을 받는다며 상림에 나가도 아는 사람이 많아서 함양 전체가 안전한 공간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작년 큰애가 없어진 적이 있거든요. cctv 확인부터 해서 정신이 없었어요. 답답한 마음에 함양 맘카페에 글을 적었는데 어떻게 알고서 어린이집 선생님과 태권도장 관장님께서 개인적으로 아이를 찾아보겠다고 연락이 와주셨어요. 그뿐만 아니라 다른 면 파출소에서 경찰관분들도 출동해주시고 소방서에서도 출동하고 정말 온 마을이 나서서 아이를 챙겨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결국은 우리 첫째가 말도 없이 친구 집에 놀러 간 거였지만 그때 받은 느낌은 잊을 수 없어요”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는 나이다 보니 교육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서 많은 생각이 든다는 엄미현씨. “이제 읍에 큰 초등학교가 두 개 있고 나머지는 작은 학교라고 하잖아요. 저는 둘째를 작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어머님이나 남편의 의견은 달랐어요. 작은 학교는 폐교의 위험이 있으니까 큰 학교에 보내는 결정을 했으면 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자라서 이야기할 학교가 없어지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중학교 진학을 하게 되면 읍으로 다시 와야 할 텐데 옛날에는 시골학교에서 중학교에 왔다고 하면 무시를 했대요. 그런 여러 가지 문제를 신경 쓸 바에는 그냥 큰 학교에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이었어요” 그럼에도 함양 육아에 필요한 것엄미현씨는 육아를 위해 육아공동체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나이 차이가 조금만 나도 놀기 어색하거든요. 육아공동체가 있어서 부모들이 친해지고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게 놀러 가기도 하고 모임도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함양 맘카페(네이버카페 ‘함양 착한 맘들’) 활동이 좋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코로나가 찾아오기 전에는 나눔도 활발하고 상림과 하림에서 맘카페 자체적으로 벼룩시장이 열리기도 하고 정기모임도 했었거든요. 그래도 육아공동체의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에 회복되진 못했어요” 당장 사회복지관의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문제가 있다. 프로그램이 배치된 시간과 부모의 관심도 문제지만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강사를 구하기도 어렵고 구하더라도 능력 있는 강사를 구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프로그램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전 선생님은 커리큘럼도 좋고 체계도 잡혀있었는데 알고 보니 의리로 와주던 모양이에요. 복지관에 좋은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면 좋겠는데 상황이 쉽진 않나봐요. 군 행정에서 관심을 갖고 예산이나 홍보가 늘어나면 육아에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럼 함양이 청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엄미현씨는 고민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함양이 소멸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거창한 사업 그런 건 제가 말하기도 어렵고 말해봤자 해결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떠날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제가 함양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제 일자리와 저를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함양에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일자리와 나를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를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일 수도 있고 청년모임일 수도 있고요”아는 시골 중 가장 예쁜 곳은 함양이라는 엄미현씨. 이렇게 예쁜 동네에서 나를 믿어주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서야 엄미현씨가 가지고 있는 가치 있는 것이 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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