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마천으로 향하는 길. 이틀 전 내렸던 눈이 그늘진 곳에 남아있다. 올해의 끝을 알리는 눈길을 밟고 있지만 목적지는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다. 지리산조망공원에 위치한 카페오도재. 그곳에는 청년 민선씨와 그의 동생 나율씨가 있다. 서울에서 내려와 함양살이 3년차를 보내고 있는 민선씨. 오픈한지 한 달된 카페를 동생과 돌보느라 분주하다. 올해 봄부터 다른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온 자매는 조망공원에 터를 잡으면서 새 출발을 알렸다. 민선씨는 카페 사장이자 농부다. 함양살이의 첫 출발점이었던 만큼 농사에 대한 애정은 상당하다. 지난 11월에는 400평을 임대 받아 호밀을 심기도 했고 트렉터도 운전한다. “농사 배우기를 진짜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흙을 만지는 일이 숭고하다고 표현하면 맞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아름답거든요. 농업이라는 게 살아있는 생물을 키우는 유일한 산업인데 직접 무엇을 심고 가꾸면서 생명을 손으로 취득하는 과정이 가치가 높다고 느껴요. 매년 텃밭을 가꾸고 있지만 서른 전에 그런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돼서 좋아요” 이제 함양에서 농사를 지으며 새로운 카페도 운영하게 된 민선씨. 함양에 오기 전 방송작가로 일한 경험이 그를 이 삶으로 이끌었다. “서울에 있을 때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일을 했었는데 전국을 취재하면서 생각보다 청년들이 지리산 자락이나 시골에서 많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청년들끼리 공동체를 꾸리고 공간도 만들면서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었죠. 그래서 저도 농촌 출신으로서 농촌에 도움이 되고 스스로 보람도 되는 이 재밌는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서른 전에 꼭 해보자고 다짐했었죠” 민선씨는 일년 정도의 기간 동안 귀촌을 준비했고 혼자 농촌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면서 가족들에게 통보했다. 그러자 “혼자 내려가게 내버려 둘 수 없다”며 20년 2월 어머니와 동생이 먼저 함양에 내려와 자리를 잡는 뜻밖의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민선씨는 직장을 정리하고 내려오면서 3명의 가족이 함양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농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함양군 체류형농업창업지원센터까지 지원하면서 본격적인 함양에서의 농촌 생활의 첫걸음을 뗐다. 그러나 시골 출신이어도 시골 살이는 쉽지 않았다. 대학을 가기 전 농촌 지역인 충북 단양에서 쭉 살아온 만큼 농촌 생활에 자신 있었던 민선씨지만 어릴 적 경험과는 달랐던 것이다. “농촌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농사 짓는 법을 몰랐던 거죠. 농사에 대한 이해도 정말 힘들었고요. 타향이다 보니 생활 부분에 있어서도 사투리 적응은 물론 실패해서 내려왔다는 주변의 잘못된 인식도 깨야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적응한다고 상당히 애를 썼어요” 그렇게 민선씨는 농사를 배우며 우여곡절 농촌 생활을 돌파해나갔다. 특히 올해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의 극심한 어려움의 나날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카페 운영 기회를 다시 잡으면서 가족들과 함께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농촌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농촌에서 살면서 혼자 불안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안전하게 직장생활하면서 30대를 준비하는데 저는 너무 뒤처지는 것 아닌가 생각도 많이 하며 불안과 싸웠죠. 그래서 자꾸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고 그런 불안함이 저를 계속 뛰게 하는 것 같아요” 이처럼 민선씨는 불안과 싸우면서도 함양으로 오면서 꿈꾸었던 일들을 하나씩 펼쳐나가고 있다. 지난 8월부터는 청년들이 다양한 주제로 모이는 함양 청년네트워크 ‘이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농촌이 귀농, 귀촌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도 밝혔다. “다들 주말에 나들이를 가고 여행도 다녀오고 하는 만큼 도시에만 사는 도시민 없고 농촌에만 사는 농촌민이 없잖아요. 도시와 농촌을 잇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농촌생활과 관련해 카페로 상담을 오시는 분들도 있어서 저희가 마치 상담 센터처럼 도시와 농촌이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들을 할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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