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 가나와의 경기가 있는 날 지인이 단톡방에 oo치킨을 시켰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늦은 밤 경기라 주전부리할 생각이 없었지만 올라온 글을 보며 오랫동안 기다렸던 경기인 만큼 그리고 이길 가능성이 높은 경기인 만큼 치맥이라도 하며 즐겁게 경기를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산골짝 마을이라 배달음식은 언감생심입니다. 불과 십분 거리에 치킨집이 있기는 하지만 배달을 시키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따라 붙습니다. 한 번에 세 마리 이상을 시킬 것, 그리고 이웃 마을 입구에 있는 다리 앞에까지 가서 받을 것. 이 두 가지 조건 때문에 나는 지난 20년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적이 없습니다.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의 경기를 비겼기에 두 번째 경기 가나 전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전반전을 보고 TV를 꺼버렸습니다. 전반에만 두 골을 먹고 나니 더는 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본 경기는 꼭 진다는 징크스 핑계를 대며 이어지는 후반 전 경기를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2층에 있던 아들이 갑자기 계단을 쿵쾅쿵광 내려오더니 TV를 켭니다. 우리가 골을 넣었다는 겁니다. 후반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름도 잘 모르는 조규성이라는 선수가 머리로 2골이나 연달아 넣었다는 겁니다. (우와 우와~ 역시 나는 보면 안 돼~ 내가 안 보니까 골을 넣는구나~) 하고 신이 나서 다시 TV를 보는데 속으로 앗차~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볼 때 두 골을 먹고 내가 안 볼 때 두 골을 넣었는데 내가 다시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TV를 안 보려고 다른 방으로 가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쾅~하고 한 골을 또 먹어 버렸습니다. 앗차~ 하는 생각이 조금 더 일찍 들었어야 했는데 정말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져서는 안 되는 꼭 이겨야만 할 가나와의 경기를 결과적으로 내가 망쳐버린 것입니다. 이제 3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16강에 올라가려면 포르투갈을 이기고 같은 시간에 벌어지는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가나를 잡아줘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승점이 같은 우루과이와 골득실을 따져 우리가 16강 토너먼트에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관건은 내가 이번에도 경기를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애국심을 발휘하여 경기를 안 보면 우리 대한민국이 기사회생하여 16강에 올라갈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징크스를 무시하고 이건 공놀이일 뿐이야~이기고 지는 것은 그날 선수들의 운일 뿐이야 라며 TV를 켠다면 우리 선수단은 포르투갈 전을 마지막으로 짐을 싸서 귀국하게 될 것입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가 선전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일본, 이란이 의외로 강호를 이겼습니다. 포르투갈이 비록 강팀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이 비장의 무기는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기량과는 무관합니다. 나처럼 징크스를 가진 사람들이 애국심을 발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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