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니 브람스가 자주 들립니다. TV 음악 프로에도 라디오FM 음악방송에도 브람스가 매일 몇 곡은 들립니다. 어제는 TV에서 빈 필하모닉 연주로 브람스 교향곡4번을 들었는데 94세의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지휘라 느낌이 특별했습니다. 지난 해 실황 연주였는데 올해 95세 이어 한 달 남짓 지나면 96세가 될 이 거장은 생물학적 나이로 치면 늦은 겨울이지만 음악적인 나이는 아직 깊은 가을임에 틀림없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가을바람에 단풍을 떨어뜨리듯 거구의 노 지휘자는 온 몸을 흔들며 관현악의 단풍을 뿌렸습니다. 관현악을 지휘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지휘자는 온 몸으로 열연하는데 94세의 노련한 지휘자는 별로 힘든 표정도 아니었습니다. 자주 들리는 음악은 또 찾아서 듣게 되네요. 어제 밤늦은 시간에 잠을 청하려고 거실에 혼자 누워 헤드폰을 끼고 유튜브에서 브람스 교향곡3번을 선곡했습니다. 브람스 음악 중 가을 냄새가 가장 짙게 난다는 그래서 영화 음악 배경으로 또는 음악 방송 시그널 뮤직으로 자주 들리는 3악장 언저리에서 잠이 들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뜨끈뜨끈한 온돌 침대에 헤드폰을 끼고 비몽사몽 황당한 꿈도 꾸었네요. 근데 잠결에 어쩐지 3악장이 안 들리고 아름답고 장중한 음악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 같더니 다시 귀에 익은 선율이 들리는 겁니다. 뭐지? 뭐지? 하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폰을 들여다보니 헐~ 아바도가 말러교향곡 3번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눈은 브람스를 보고 손가락은 말러를 터치한 겁니다. 아무리 잠결이었다지만 말러를 브람스로 듣고 있었다니 참 부끄럽네요. 자기 전에 동화같은 판타지 영화를 보다가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황당한 꿈을 꾸었네요. 달나라 여행가는 표를 사려고 기다리는 꿈이었습니다. 바로 앞에서 젊은 친구 두 명이 표를 끊으면서 생글생글 기대에 차 있었고 나는 달나라 여행을 실제로 하면 겁이 날 것 같아 망설였습니다. 브람스와도 말러와도 아무 상관이 없는 개꿈이었어요.브람스는 4개의 교향곡을 만들었는데 마지막 작품이 최고작이라고 합니다. 1번은 베토벤의 10번이라고 하고 2번은 전원, 3번은 영웅으로 베토벤을 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4번은 선배 작곡가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4번의 4악장은 교향곡의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이 아닌 파사칼리아 변주곡 형식으로 브람스만의 창의적인 악장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지난 봄 정원에서 장미를 가꾸며 내내 말러를 들었습니다. 브람스가 가을이면 말러는 봄입니다. 브람스 음악에 단풍이 들면 말러 음악에는 장미가 피어납니다. 사실 나는 브람스보다 말러를 더 좋아하고 자주 듣습니다. 아내는 곶감 농사를 하는 내가 곶감 잘 말러라고 말러를 듣는다고 놀리는데 놀리거나 말거나 나는 하루도 말러를 듣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어제 밤 잠자리에서 브람스를 검색하고 말러를 터치한 손가락을 탓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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