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건 농업용수였습니다. 석 달 전 지하수가 고갈되고 임시방편(?)으로 계곡물을 사용한다고 했지만 말이 계곡물이지 실상은 논밭에 사용했던 농약이 흘러들어갈 수 있는 농수로 물이었습니다. 물론 계곡에서 내려온 물이기는 하지만 중간에 주택도 있고 농수로를 따라 흘러흘러 내려온 물을 모아 물탱크에 넣다보니 눈에 보이는 찌꺼기 외 눈에 보이지 않는 위해물질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찌꺼기 같은 것들은 수도꼭지나 세탁기 노즐을 막아 망가뜨린다든지 보일러 통속에 쌓이고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이 물로 생각 없이 또는 용감하게 샤워한 사람들의 피부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처음엔 긴가 민가 싶었고 나만 그런가 싶어 가만있던 사람들이 한번 말이 나오니 “나도 그래~ 나는 더 해~” 하며 이 물로 더 이상 샤워를 안 한다는 겁니다. 한번 말이 나오니 요즘은 사람들이 만나면 불편했던 이런저런 일들을 털어놓습니다. 불평의 봇물이 터진 겁니다. “나는 이 물로 설거지는 안 해~ 돈이 좀 들어도 생수를 사 와서 해”라고 합니다. 행정에서 임시로 공급해주는 식수용 생수가 있기는 하지만 설거지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마트에서 생수를 사 나른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얼굴에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고 하소연하던 아들은 참다못해 오늘 엄마랑 피부과에 갔습니다. 곶감농사를 가업으로 잇겠다고 (물 맑고) 공기 좋은 지리산으로 지난 해 가을 귀농한 아들에게는 정말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실은 나도 샤워를 하면 몸이 가렵고 발진이 생겨 병원에 가보려고 벌써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 가지고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싶어 참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물을 쓰고 있는 마을 주민 모두가 정밀 검진을 받아야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석 달 전 민박 성수기 이후 물 문제로 손님을 여태 받지 못하는 주민은 보상을 요구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주민들의 이런저런 불편은 따지고 항의할 게 아니라 행정에서 먼저 조치를 해야 할 사항입니다. 특히 위생문제는 아무리 경미한 것이라도 미리 조치를 해야 나중에 터질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물 문제로 민박 손님을 아예 못 받고 있는데 손발이 안 맞는 행정에서 주방 가스 안전 확인 전화가 옵니다. 깨끗한 물을 못 먹고 깨끗한 물로 씻지 못하는 불편과 고통을 참은 지 3개월 만에 새로운 관정을 겨우 확보했는데도 이 물을 실제로 사용하려면 절차상의 이유로 내년 봄에나 가능하다는 상수도 사업소 얘기를 듣고 분위기는 험악해졌습니다. 주민들은 존중받지 못해 화가 난 사람들의 얼굴로 참았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실태 점검하러 한번 와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엄써~ 이제 추워지면 그나마 이 물도 얼어터질 텐데... 속이 상하네 증말~” 입에서 정말 험한 말들이 쏟아져 나올 만도 한데 착한 사마리아 인들은 겨우 한다는 말이 “도대체 도대체... 속이 상하네...”가 전부입니다. “그라모 우리가 찾아가서 우리의 권리를 상기시켜주자~” 주민으로서, 군민으로서, 도민으로서, 국민으로서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있는 어느 누구도 찾아와 위로의 말 한마디 없다며, 그라모 우리가 찾아가서 우리의 권리를 상기시켜주자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라 조금 더 기다려보자며 참고 또 참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어 관정 물을 임시로 탱크에 올리기 위해 배관을 노출해서 연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이제 엄천골에 동장군이 쳐들어와 노출된 배관이 얼어붙기 전에 땅속으로 들어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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