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적 중에 가장 흥미진진한 기적이 뭐냐고 물으면, 필자는 두 말 않고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기적 말이다.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나 우리 인간들의 생각을 초월해서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남편이 벌고 아내가 벌고 안팎으로 벌어서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을 번다고 하던데, 그래도 노상 부족하단다. 애들 학원비가 한 달에 수백만 원씩 들어가고, 보험료가 수백만 원씩 들어가고, 경조비가 몇 십만 원씩 들어가고, 각종 모임에 회비가 또 몇 십만 원씩 들어가고, 병원에 갖다 주는 돈이 몇 십만 원씩 된다는 거다. 그 집엔 딸이 둘인데, 방학만 되면 쌍꺼풀 수술해 달라고 보채고, 턱을 깎아야 된다고 그러고, 하여튼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가는지 그냥 줄줄 샌다는 거다. 많이 벌어도 쓸 돈이 없다고 푸념하는 그 사람을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옛날 생각을 하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옛날엔 너무나 가난해서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있었다. 덮고 잘 이불이 없어서 10남매, 11남매가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시절이 있었다. 옛날 초가집이 얼마나 추웠던가? 땔감도 넉넉하지 않아서 밥을 할 때 아궁이에 불 한번 땐 것으로 방바닥을 데워 그날 밤을 보냈다. 외풍은 또 얼마나 셌던지, 이불을 덮고 누워도 코가 시리고 발이 시려서 잠을 설쳤다. 그나마 아랫목은 온기가 좀 남아 있었지만, 저 윗목에 있는 요강은 얼음이 꽁꽁 얼었다. 옛날에는 집 안에 화장실이 없었으니까, 밤엔 방 안에 요강을 갖다 놓고 볼 일을 보던 시절이었다. 요즘도 간혹 우리 동네에는 아직도 요강을 쓰시는 할머니들이 계시던데, 아무튼 그렇게 가난해서 서로 이불을 잡아끌다 보니까 이불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다는 말이 나온 거다. 또 먹을 것이 없어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먹기도 했는데, 소나무 껍질에 있는 송진 때문에 변을 보려고 뒷간에 가서 앉아 있으면 똥은 안 나오고 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그래도 우리 속담에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처럼 그렇게 어려워도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고, 가정이 화목해서 항상 집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동네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냈는데, 요즘엔 자기 식구들끼리도 인사를 안 하고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경제가 성장해서 굶는 사람도 없고, 돈도 많아지고,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니 어쩌니 그러는데도 인심은 말도 못하게 박해졌다. 그러니까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몇 달씩이나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발견이 되고 그러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2천 년 전엔 오죽했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 왔는데, 지금처럼 무슨 회관이나 체육관도 아닌 허허벌판에 모인 사람들이 해가 지도록 예수님의 말씀에 몰입하고 있다가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다들 허기가 져서 죽을 지경이 된 것이었다.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남자 장정들만 헤아려도 5천명이나 되었으니, 남녀노소 다 따지면 2만 명 이상은 족히 되는 숫자였다. 재정도 없었지만, 돈이 있어도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는 빈들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 어린 소년 하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들어있는 자기의 도시락을 드렸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셔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게 했더니, 거기에 모인 무리들이 다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게 거두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주말에 일어났던 이태원 참사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수습도 필요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의 슬픔을 보듬는 일이 더 중요한 때다.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자식이나 가족, 친구들을 잃은 이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누구하나 책임은커녕 나서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의 마음을 모아서 따뜻한 위로를 전해 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비록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에 불과한 작은 정성일지라도 거기에 어떤 기적이 보태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돈 많은 어느 장로님의 헌금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린 아이의 도시락 하나가 5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흥부전에 나오는 박을 타는 이야기도 아니고, 도끼를 물에 빠뜨린 나무꾼이 금도끼 은도끼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 있는 벳새다 들녘에서 실제로 행하신 능력의 말씀이다. 그리고 이 기적은 예루살렘 같은 도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빈들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시골 가난한 동네에서 무슨 대단한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하겠지만, 앞으로도 아름다운 기적들은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우리 동네에서 계속 일어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휘황찬란한 조명이나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럴이 없더라도 금년 겨울은 우리 마을에 사랑의 예수님이 오시리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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