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부모들은 자녀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 해주는 말이 있다. “네가 이제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을 만나게 될 텐데, 두 가지를 명심해라. 첫째, 네가 말하는 시간의 두 배만큼 친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사람은 누구나 단점과 허물이 있단다. 그러니 친구의 단점과 허물에 개의치 말고 친구 속에 숨어 있는 장점과 강점을 찾아 보거라.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보다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친구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둘째, 어떤 경우에도 친구 험담을 하지 말아라. 유대 경전 미드라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남을 헐뜯는 험담은 살인보다도 위험하다. 왜 그런가?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으나, 험담은 반드시 세 사람을 죽인다’ 곧 험담을 퍼뜨리는 사람 자신, 그것을 말리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그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586년 유다 왕국은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성전과 성벽이 파괴되고 상류층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이를 ‘바빌론 유수’라 부른다. 이후 유대인들은 그들끼리 똘똘 뭉쳐야 했기에 “모든 유대인은 그의 형제들을 지키는 보호자이고, 유대인은 모두 한 형제”라는 공동체 정신이 흩어져 사는 세계 각지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하나로 묶어 유대 사회와 유대 종교를 발전시켰다. 물론 그것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의 주원인이 되었다. 고대부터 이러한 삶의 방식을 추구한 유대인들에게 자연히 공동체 구성원 간의 단결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고 이를 그들은 ‘유대인 고리’라고 말했다. 이는 유대 신앙이 강조하는 생활 철칙으로 자리 잡아 유대인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살게 되었다. 이는 나 하나가 아니고 동족이 다 같이 잘 살아야 함을 강조해, 유대인은 모두가 한 가족으로,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도 유대인이라는 대가족으로 뭉쳐져 있음을 뜻했다. 하지만 “아무리 길고 훌륭한 쇠사슬이라도 한 개만 부러지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탈무드의 경고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디아스포라 공동체 구성원 간의 고리, 곧 신뢰를 깨는 험담이다. ‘라손 하라’(lashon hara)는 히브리어로 ‘악한 혀’를 뜻한다. 이렇게 험담은 인간관계를 파괴해 공동체 사슬마저 끊어 놓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를 극도로 경계했고 이를 위해 자녀가 유치원에 갔을 때 철저히 교육시키는 것이다. 구약성경 레위기는 “너는 네 백성들 가운데로 험담하며 돌아다니지 말라”고 가르친다. 또한 미드라시에는 ‘라손 하라’를 살인 이상의 죄로 여기고 이를 어기는 자는 입을 더럽혀 토라의 말씀과 기도의 말씀까지도 더럽힌다고 하여 ‘나병’이라고 믿었다. 나병 환자는 공동체에서 같이 살 수 없듯이 험담하는 사람도 공동체에서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교묘히 비꼬는 말투나 말 이외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행동 곧 특정인 이름이 거론될 때 인상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흔들거나, 눈을 굴리거나, 입을 삐죽거리며 부정적 속내를 내비치는 표정도 잘못된 행동에 속한다. 의인의 기본 덕목은 “혀를 지키는 것”이라고 탈무드는 강조한다. 오늘날 SNS상의 공격성 글이나 악플성 댓글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악플은 심리적 살인 행위이다. 실제로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유대인의 토론 문화가 성숙한 것은 비판은 존중하되 인신공격적 비난과 비방은 엄격히 금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이를 단단히 가르치며. 이에 입각한 토론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를 인성과 교양의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다. 그들의 토론 문화에는 ‘토론이 건설적인 비판이어야지 파괴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유대인들은 토론할 때 ‘비판, 비난, 비방’을 엄격히 구분한다. 우선 ‘비판’이란 비평한다는 뜻으로 상대의 오류를 명확히 지적하며 그에 대한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이고, 한편 ‘비난’은 상대방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 힐난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악의가 있다. 또 ‘비방’은 모두 헐뜯는다는 의미다. 곧 무조건 상대방을 헐뜯고 보는 것이다. 이건 분명 살인죄임을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 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함으로 상대방을 미워하고 험담하는 것 자체가 살인죄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다. 우리가 하는 말이 상대방을 죽이고 있는지, 아니면 감동을 주고 생명을 살리고 있는지 생각하고 되돌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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