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없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뭐”라고 말하는 사람은 농사에 대해 정말 ‘1’도 모르는 사람이다. 농사가 어려운 이유는 올해 열 개의 문제를 해결하면 내년엔 새로운 열 개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사는 열 개중 한 개는 인간의 몫이고 나머지 아홉은 하늘에 달렸다고.함양군 서상면에 샤인머스켓 농가 취재를 위해 날을 잡았는데 취재일이 뒤로 밀린다. 농가에서 수확시기를 계속 늦췄기 때문이다. 수확이 늦춰지면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추석시즌도 지나 버렸다. “마지막 수확을 앞두고 일조량이 적어 당도가 올라오지 않아 애를 먹었어요. 당도가 17~18브릭스는 돼야 수확을 하죠. 위쪽은 20~21브릭스 이상 나옵니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된 여성호씨는 마음이 바빠서 당도가 오르지 않은 채 일찍 출하하는 것은 ‘제 발등 찍는 짓’이라고 했다. “당도가 낮아 맛이 없으면 더 이상 소비자는 찾지 않아요. 신뢰의 문제죠”1998년부터 아내와 함께 포도농사를 지은 여성호씨. 캠벨포도에서 샤인머스켓으로 전환한지는 5년째다. 샤인머스켓은 달콤하고 껍질째 먹을 수 있고 아삭한 식감이 매력적인 과일이지만 농사짓기는 까다롭다. 샤인머스켓은 예민하고 고집이 세다. 캠벨포도는 상처가 나도 검은색으로 착색되지만 샤인머스켓은 한번 상처가 나면 수확 때까지 그대로 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어린아이 다루듯 조심스레 정성을 다해야 한다. 포도알이 균등하게 자라고 모양도 동그랗고 예쁘게 크도록 개화시기도 한 번에 잘 맞춰주고 알 솎기도 잘해야 한다. 이파리 하나도 소중히 다뤄야 한다. “나뭇잎은 과학이에요. 잎은 햇빛을 받아 영양분을 열매에게 주고 열매를 달고 다면 단풍이 들어요. 잎이 단풍이 잘 들면 영양분을 뿌리에 내려주죠. 그럼 내년 농사가 잘 돼요”이들 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올해가 아니라 내년 농사였다. 내년 농사가 잘 되려면 욕심은 금물이다. “사람을 한 명 업고 가는 거랑 두 명 업고 가는 거랑 뭐가 더 힘들겠어요. 나무도 똑같아요. 욕심내서 너무 크게 키우면 내년에는 열매를 안줘요” 여성호씨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농사는 하늘이 좌우한다는데 올해 날씨가 좀 안 좋았다고 원망하지 않아요. 내년에도 잘 부탁해야 하니 이 정도에도 항상 감사합니다 해야죠”송이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알 크기도 균일하고 둥글게, 단맛도 중요하지만 껍질과 속살이 겉돌지 않아야 제대로 키운 것이란다. 오늘은 첫 수확 날. 여성호씨가 주렁주렁 달린 샤인머스켓 재배용 봉지를 벗겨낸다. “이때가 제일 떨려요. 속을 알 수 없으니 얼마나 잘 컸는지 알 수 없거든요” 종이를 벗겨내니 윤기가 흐르는 연초록 샤인머스켓이 모습을 드러낸다. 당도를 측정하는 송이마다 18브릭스 이상이다. 포도송이를 바로 따지 않고 나무에 매단 채 포장지를 교체한다. 작업도 쉽지만 포장할 때 수확물이 바닥에 닫지 않아 상처를 덜 입히기 때문이다. 맛을 보라시기에 500원짜리 동전보다 큰 알을 잡았더니 그보다 작은 알이 맛있다고 주신다. 소비자 입장에선 과일이 무조건 크면 좋다고 여겼는데 그것도 정답은 아니었나 보다. “한 송이가 1킬로 이상 되는 것보다 30알 송이 기준에 700그램 정도가 가장 맛있어요. 숙성, 당도, 과육, 과피, 식감 등의 밸런스가 알맞죠” 농사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모양으로 키우는 게 힘들다. 하지만 부부는 그런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부의 농장 나무에는 천이 매달려 있다. 천에는 작년과 올해 착화수가 적혀 있다. 농장 현장그래프와 같은 이 천에 적힌 수치를 보고 적게 열린 나무에는 시비를 더하고 많이 열리면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한다. 꼼꼼하고 야무진 아내의 아이디어다. 늦게 출하를 시작했지만 여성호씨의 샤인머스켓은 최고명품을 찾는 소비자들 손에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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