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닭이 내 손에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혹여 다칠까, 아플까 애지중지하며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지 않았을까. 황금알에 과욕을 부려 닭의 목은 비틀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지리산소담농원을 찾아 함양군 유림면 대치길을 따라 갈 때만 해도 ‘귀농한 부부의 좌충우돌 농사짓는 이야기를 듣겠지’ 했다. 대치마을 꼭대기까지 올라가서야 보게 된 지리산소담농원 간판. 농장 뒤로는 온통 밤나무가 심어져 있고 2500여평의 배 과수원과 농장 가장자리엔 100여개의 벌통이 있다. 문정오, 반성자 부부는 배, 밤, 오디, 블루베리를 재배하면서 양봉과 양계업을 하고 있었다. 올해로 귀농한 지 4년째. 38년간 농장을 했던 전 주인의 것을 그대로 받았다는 이곳은 부부가 하기엔 벅차 보이는 규모다. “농사는 처음이었죠. 아무것도 몰랐어요. 가르쳐 주는 곳도 없고 배울 곳도 없었어요. 배 농사를 짓는데 전지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완도, 진도, 해남, 장수, 안동, 정선, 영천, 파주, 강화까지 전국을 다니며 귀농할 곳을 찾고서야 공기 좋은 이곳이 끌려 함양을 택했다고 했다. 농장만 보고 처음 만났을 땐 과수원을 하는 부부 귀농인이구나 했는데 잘못 짚었다. 도시에 살던 문정오씨는 닭에 빠져 집 옥상에서 닭을 키웠다. 도심 한가운데 주택에서 닭이라니, 시골로 와야 했던 이유가 명백하다. 문정오씨의 진짜 귀농 목적은 닭이었다. 청계란을 낳는 닭이라는데 보기엔 보통 닭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닭의 속살을 소고기처럼 붉게 만드는 겁니다. 프리미엄 닭으로 만드는 거죠. 소고기처럼 맛도 좋고 영양가도 우수한 품종의 닭이라면 부가가치도 높아질 겁니다” 소고기처럼 붉은 닭고기라. 문정오씨는 좋은 품종의 닭을 교배시켜 더 우수한 품종을 만들어 내는 품종개량을 하고 있었다. 가장 우수한 것만 골라 새로운 품종으로 개량된 닭은 맛도 좋고 닭이 낳은 청계알도 보통 계란보다 영양성분이 높다.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성분 분석을 했는데 청계알이 비타민도 많고 보통 계란보다 영양성분이 7~8배 높았어요” 산란계는 매일 알을 낳지만 청계알은 32시간 만에 나온다. 3일에 2개 정도의 청계알을 얻는다고 보면 된다. 문정오씨는 “품종개량 하는 닭은 따로 팔지 않지만 청계알은 판매하긴 해도 양이 부족해 수요를 맞추기 힘들다”고 했다.
문정오씨가 현재 몰두하는 닭의 품종개량은 시간이 많이 걸려 그 과정에 어려움이 따른다. 우수한 유전자를 받은 닭알이 부화하는데 21일, 어미닭이 되는데 6~7개월, 다시 닭알을 놓을 때까지 약 1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우성인자로 개량된 닭이 되려면 1년, 여기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단계를 밟아 품종개량 된 닭이 농장을 휘젓고 다니는 저 녀석들인가? 자세히 보니 닭발이 헉! 붉다’ “아직 진행단계입니다. 닭벼슬도 더 진한 붉은 색이 돼야 하고 닭발도 더 붉어져야 해요, 그럼 속살도 붉게 나올 겁니다. 지금 보시는 닭은 실패작이에요” 닭발이 이미 붉은데 실패작이라니. “품종이 개량된 상태에서 다른 품종을 만나도 허물어지지 않아야 우수한 품종이 유지되는데 그걸 고종이라고 해요. 고종이 안되면 원위치 되는 거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죠,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품종개량에 성공한 닭은 닭장 안에 모셔놨다. 이 닭들이 두 세 번의 품종 업그레이드 단계에 성공하면 붉은 속살을 띠고 살코기는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프리미엄 닭이 되는 것이다. 이 분야를 전공하거나 따로 배운 적도 없는 문정오씨는 파충류 색을 변형시키는 것에 착안해 삼원색을 접목시켜 닭의 속살을 붉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글쎄요, 닭을 품종개량 해서 판다는 얘기는 전국 어디서도 못 들어 봤죠. 제가 최초가 아닐까요”
품종 개량한 닭을 고종시키는 게 관건이다. 문정오씨가 닭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아내 반성자씨는 농사지은 배, 벌꿀, 청계알 등을 시장이나 축제장, 상림토요장터에 나가 직접 팔았다. “농사도 처음, 장사도 처음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죠.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자리를 챙겨주고 요령도 가르쳐주고” 닭에 푹 빠진 남편을 위해 시골살이를 택한 반성자씨에겐 다행히 아직은 서툰 그녀에게 힘이 돼 주는 이웃이 있었다.
어설픈 4년 차 귀농부부와의 만남일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지리산소담농원에는 황금알을 낳는 닭 대신 황금알보다 귀한 닭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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