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아내를 먼저 천국으로 보내면서 필자의 홀로서기는 시작되었다. 가사로 통칭되는 살림을 남자가 해내기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조주부(趙主婦)를 자칭하면서 살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친께서 몇 년 전에 낙상하셨고, 인공 고관절 수술을 하셨다. 인천에 사시던 어머니는 1년을 넘게 병원에 계셨고, 퇴원 후에도 혼자 생활하시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그냥 모셔오기로 했다. 목회를 핑계로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지 못했었는데,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판단했기에 함께 살기로 한 것이다. 삼형제 중 맏이인 필자는 당연히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 생활하는 필자에게는 누구와 상의할 사람도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효자 소리를 들었을 만큼 심성이 괜찮다 싶었던 필자였지만, 막상 어머니와의 동거는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주간보호시설에 나가시면서 시간적 여유는 확보 되었지만, 이런 저런 경비는 감수해야 했다. 한두 달은 그렇게 넘어갔는데, 반복되는 어머니의 퇴행적 행동 때문에 조주부의 마음이 상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늘 똑같은 반찬을 꺼내 놓을 수 없는 고민과 국이 있어야 식사를 하시는 어머니는 조주부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내에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에게도 악마가 있는 것일까?’ 조주부는 심한 자괴감에 빠져 버렸다. 목사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착한 아들 노릇하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것일까? 남들에겐 상담도 잘 해 주고 다니면서, 왜 나는 이 모양인가? 인생의 주기를 따라서 노년기에 접어드신 41년생 우리 엄마를 그렇게도 이해해 드릴 수 없었던 것일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될 것을 사소한 일들을 그냥 넘기지 못한 것이 엄마와의 충돌을 피하지 못하게 된 이유였다. 옛날에 쓰던 물건들에 대한 심한 애착도 젊은(?) 아들에겐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툭하면 뭐가 없어졌다느니, 누가 뭘 가져갔다느니, 뭐가 안 보인다느니... 옛것에 대한 엄마 집착은 끝이 없었다. 옷은 아무 데나 벗어 놓으셨고, 요실금 때문에 쓰기 시작한 기저귀는 둘둘 말아서 여기저기 숨겨 놓으셨다. 어르신을 모시면서 냄새까지 잡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고쳐지질 않는다. 살림살이는 만만치 않지만, 엄마는 한 번도 주머니를 열지 않으신다. 교회에서 나누어 드리는 빵이나 간식들을 한사코 챙겨 오시는 엄마가 욕심 많은 할매처럼 보여서 야단을 치기도 했다. 어르신 유치원 등원 시간을 맞춰서 미리 식사며 약 드시는 것까지 다 챙겨 드리고, 화장실도 미리 다녀오시게 했는데도, 8시에 도착한다는 차량에 미리 나가 있지 못한다고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러는 조주부 역시 약속시간에 15분, 30분 늦는 건 다반사이면서 말이다. 오늘은 등을 떠밀 듯 엄마를 내 보내 드리고, 일부러 따라 나가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하시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아들에게만 의존하는 엄마가 얄미웠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설거지를 마저 해 놓고 따라 나가 봤더니, 아직도 신발을 못 신고 계셨다.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엄마는 엄마대로 억울하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더라면서 왜 바보 취급을 하느냐며 울먹거리시면서 역정을 내셨다. 아차 싶었다. 나쁜 놈! 어찌 제 어미에게 그럴 수 있을까? 죄송한 마음과 내 자신에 대한 분한 마음을 안고 집에 들어와서 청소를 하다 보니, 어르신 유치원에서 만들어 오신 작품(?)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도화지 위에 예쁜 두 손을 오려 붙여놓고 손톱을 빨갛게 칠해 놓으셨다. 손목과 손가락엔 반짝거리는 소재로 반지와 팔찌를 예쁘게 장식하신 작품이었다. 빈 책장 한 켠에 보란 듯이 펼쳐 놓으신 작품에선 ‘나도 여자다!’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 오시고서도 자랑도 못하시고, 자신만의 공간에 전시(?)를 해 놓으셨던 우리 엄마. 학부형(?)이란 놈이 어르신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과로 하루를 보내고 오셨는지 물어봐 주지도 않았다니! 아들이나 손주한테는 쩔쩔 매면서 엄마는 그렇게 만만했단 말인가?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기저귀에 간식에 찬거리 사 대고... 쉽지 않은 집안 살림에 조주부가 짜증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었지만, 한두 해 하고 말 일도 아닐 건데, 좀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질책했다. 이제 태풍도 물러가고 뙤약볕이 따가운 계절이 되었다. 들판에는 벼이삭이 따닥따닥 익어가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고 나면, 금세 겨울이 되겠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는 체라도 하면서라도 함께 동행해야 하는 삶을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 우짜둥둥, 참아야 하느니라! 힘내래이, 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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