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굶주린 여우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커다란 나무에 뚫린 구멍 속에서 양치기 소년이 먹으려고 놓아둔 점심식사를 발견했습니다. 여우는 좁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 음식을 마음껏 먹었습니다. 배가 잔뜩 부른 여우는 밖으로 나오고자 했지만 배가 너무 불러 좁은 구멍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여우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이제 죽게 되었다며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무 옆을 지나던 늙은 여우가 굶주린 여우에게 “왜 울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굶주린 여우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은 늙은 여우는 웃으며 “걱정하지 말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배가 쏙 들어가 나올 수 있을거야”하며 여우를 안심시켜 주었답니다. 어쩌면 굶주린 여우와 늙은 여우는 같은 시간을 마주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굶주린 여우는 양치기 소년의 음식을 가로채 배부르게 먹고 좁은 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하니 죽을까하는 “불안의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늙은 여우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배가 고파지니 그저 기다리면 된다고 웃으며 지나간 것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이 없는 것처럼,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대 헬라세계의 시간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크로노스(χρονος)의 시간과 카이로스(καιρος)의 시간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보편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은 결정적인 시간, 특별한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는 인생길에서 모든 때와 시기를 조율하며 가장 좋은 때를 결정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인생의 타이밍(Timing)”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때(Best Thing, Best Way, Best Time)에 결정하며 성공을 이루며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때때로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되었던 그 시간이 “가장 정확한 때”였고, 또한 빠른 시간이 “늦은 때”였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삶의 지혜”를 얻습니다. 시간은 내 의지와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그저 신의 선물(Gift)입니다. 내 호흡을 5분이라도 더 연장하고 싶다하여 연장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빠르고 늦은 것을 가지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이유가 없습니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카톡(KakaoTalk)문자 한통을 받았습니다. 글 제목은 “92세 할머니가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것”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어. 열심히 모은 돈 죽을 때 가지고 갈 거여? 왔을 때처럼 빈손으로 가는 거여. 애지중지 키운 자식도 지 가정 차리면 그만이여. 젊은 사람들 말맹키로 인생은 타이밍인 거시었다. 이제 좀 놀아볼까 했더니 옘병. 이곳저곳 안 쑤시는 곳이 없어. 이 할미가 진짜 억울한 건 자식놈 뒷바라지한다고 돈 있어야 노후가 편하다케서 억척같이 모았는데 그 놈의 인생이 뭐라고, 뭐 이리 아득바득 살았는지 옘병. 그러니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행복하게 살어. 사소한 일에도 기뻐하고 누릴 수 있는 행복에 최선을 다하며 살어. 뭐 큰일을 하느니 숭고한 일을 하느니 염병 떨지 말고, 뭐가 되었든 ‘너부터’ 잘 살아! 그게 최고의 삶이야. 이 글을 읽는 너도 인생 너무 아끼지 말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희생하지 말고. 네 인생을 살어. 행복은 나중으로 미루면 돈처럼 쌓이는 게 아니라 연기처럼 그냥 사라지는 거여.”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당연히 누리는 것이 아닌 기적(Miracle)입니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면 비로소 보이는 선물입니다. 더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혹이라도 지금, 실패의 시간 앞에 서 있다면 “오늘(Day)”이라는 시간 속에서 잘못된 생각의 틀(shape)을 수정하면 되고, 옆길로 빠지지 않도록 시간 속에서 교정되면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오늘 행복에 무뎌진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쩌면 많은 경우 우리가 오늘 만나는 고난(苦難)과 위기(危機)가 가지는 역할(役割)이란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기적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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