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현관문 고리에 까만 봉지가 매달려있다. 문 앞에 먹을 것이 쌓여있을 때도 있다. 물건만 봐도, 채소 다듬어놓은 형태만 봐도 누가 전해준 것인지 알 수 있다. 아내의 고향인 서하면 월평마을로 귀농한지 7년차. 처음 귀농했을 때는 곁을 내 주지 않던 마을 사람들이 하루에도 열두 번 인사를 했더니 형님, 동생이라 불러주었다. 올해부터 마을이장도 맡게 됐다. 마을이장도 하고 귀농귀촌연합회장과 체류형농업창업지원센터교육생을 위해 멘토 역할도 하며 귀농인의 정착을 돕는 강헌기씨. 고추수확이 한창인 요즘 고추농가 취재를 위해 수소문했더니 강헌기씨가 추천자로 지목됐다. 수십년 고추농사를 짓는 농민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강헌기씨의 고추밭은 일반농가와 모양새가 조금 달랐다. 고랑의 간격이 넓었고 고추가 심어져 있는 두둑도 높이는 낮되 넓었다. 비닐멀칭을 하는 대신 제초매트가 깔려 있었다. 제초매트 아래에는 일정한 물과 양분공급이 용이한 관수시설인 점적호스가 설치돼 있었다. 두둑을 좁게 하여 일자형태로 키우는 것보다 키를 억제하여 옆으로 자라도록 하면 열매가 많이 달린다. 제초매트는 비닐멀칭과 비교했을 때 장단점이 있다. 비닐멀칭은 고추 정식을 한 후 냉해피해는 적게 받을지 모르겠으나 7~8월 고온기 때는 지열을 높이는 단점이 있다. 올해처럼 냉해피해가 컸을 때는 애를 먹긴 했지만 냉해를 견디고 난 지금은 바람이 통하고 수분흡수도 잘 되는 제초매트를 깔기 잘했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그가 귀농하여 어떤 작목을 심어볼까 고민할 때 동네분들이 “그래도 고추농사가 낫지”라는 한마디에 고추를 심었다. “고추를 많이 심으면 많이 따겠죠. 나는 적게 심고 많이 따자” 그러려면 더 많이 공부하고 기존농법에서 탈피하여 여러 가지 시도도 해 봐야했다. 고추는 입과 줄기를 키우는 영양생장과 과실을 키우는 생식생장을 번갈아 한다. “고추가 영양생장을 하는지 생식생장을 하는지 그때그때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줘야죠” 고추농사는 양분과 수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가 고추밭에 점적호스를 깐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올해 고추모종 1300주를 심었다. 적게 심고 많이 수확한다는 그의 계획대로 10월 초·중순까지 수확기간을 길게 잡았다. 이를 위해선 예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냉수한잔 마시고 고추밭으로 나와 본다는 강헌기씨. 밤새 안녕하였는지 관심을 갖고 정성을 쏟으니 고추가 병들 틈이 없다. 짧은 기간에 고추박사가 된 강헌기씨는 수확이 끝난 후에도 중요한 일거리를 공개했다. 토질검사를 의뢰하여 고추밭 토양을 진단하고 처방서를 받아 밭 장만을 하는 것이다. 부족한 영양분을 공급하여 로터리를 하면 다음해 농사는 더 유리해 진다. 고추탄저병, 칼라병, 역병에 강한 복합내병계 품종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강헌기씨는 건강에 문제가 없도록 안전성이 확보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신뢰를 얻기 위해 최근 GAP 인증도 받았다. “귀농하기 잘했다,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강헌기씨는 귀농예정자들에게 “힘 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돈을 벌 수는 없다. 농사가 결코 쉬운 건 아니지만 부지런히,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귀농초기 막막했던 그때 심정을 누구보다 알기에 강헌기씨는 자신의 노하우를 기꺼이 방출한다. 함양에 살러 온 사람이 잘되면 좋다. 같이 잘 먹고 잘 살면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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