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경일은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1호로 공포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국경일엔 대부분 절(節)이 붙는데, 절이란 한자의 훈은 경절(慶節)로 임금의 생신을 비롯한 국경일을 지칭하는 말이며, 온 국민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기쁜 날이라고 해서 기념절 노래도 만들어 부릅니다. 광복절(光復節)은 1945년 8월 15일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날로,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경일 중 가장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경술년(1910년) 8월 29일, 조선사람 대부분은 나라를 잃고 슬피 울었습니다. 반대로 그날 일본사람은 조선 나라 땅을 얻게 되었다고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뛰어놀았습니다. 조선은 실국(失國: 나라를 잃음)이 되었고, 일본은 병합(倂合: 하나로 합침)이 된 것입니다. 경술년에 나라 잃은 것을 부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하고, 왜(倭)에 빌붙어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은 한일합방(韓日合邦) 또는 일한병합(日韓倂合)이라는 허튼소리를 지껄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긴 것이지, 조선국과 일본국이 하나의 나라로 합쳤다는 뜻인 한일합방·병합이라는 해괴한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을유년(1945년) 8월 15일, 경향·내외 곳곳에서 우리 선열들이 피흘리며 왜와 싸운 대가로 말미암아 잃었던 나라 땅을 되찾았습니다. 광복 열사·의사·지사들이 ‘국토회복 조국광복’을 외치면서 이등방문 총독부에 폭탄을 던졌기에 마침내 이날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일합방’이 아니고 ‘경술국치’이며 ‘8.15독립’이 아니기에 ‘8.15광복’이 되어야 짝이 맞고, 이날을 ‘독립절’이라 하지 않고 ‘광복절’이라 부릅니다. 앞이 캄캄했던 세상에서 빛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말뜻이 광복(光復)이고, 목을 조여 숨이 막힐 듯한 억눌림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해방(解放)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을유년(1945년)에 나라를 되찾은 것을 두고 을유광복(乙酉光復)이라는 바른 역사용어를 써야 함이 마땅합니다. 유년 시절, 해마다 8월 15일이 되면 마을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학동마을 왼쪽 메봉산 날개를 따라 흐르는 위천 갱분(강변)에 모여 징·장구·꽹과리·북 장단에 맞춰 한바탕 동네 모꼬지(여러 사람이 모여 놀이판을 여는 것)를 했습니다. 금은빛 모래밭에서는 장정들이 샅바씨름으로 힘겨루기를 했고, 천연 잔디밭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았으며, 아낙들은 널뛰기로 한껏 기분을 냈습니다. 이날은 농사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무덥던 한여름 더위도 한풀 꺾여 천렵하기에도 좋은 날이었습니다. 커다란 가마솥에 피라미·붕어·메기·각종 채소 등을 넣고 장작불을 피워 어탕국수를 끓여 온 동네 사람들이 냇가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막걸리잔을 나누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낮을 지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에 마을로 돌아오면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라며 싱글벙글 온 동네를 쏘다니며 뒤풀이 잔치를 이어갔습니다. 부모·형제·이웃 모두가 웃는 얼굴로 ‘오늘은 광복절 해방된 날이다. 신나게 놀아보세.’라며 즐거워하니 어린 저도 신명나서 덩달아 뛰어다니며 하루를 보냈던 요람 시절 추억이 새롭습니다. 학창 시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노 은사로부터 광복절 노래를 배웠습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잃었던 나라를 되찾았으니 얼마나 감격에 겨웠으면 나라 지천에 늘린 흙도 다시 만져보고, 바닷물도 우리와 함께 춤을 춘다고 노랫말을 지었겠습니까? 그토록 소원하던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선열들의 주검이 분통하고, 어렵게 나라를 되찾아 이제 빛을 보게 되었으니, 우리 이날을 잊지 말고 힘써 일하자고 다짐하는 광복절 노래는 장엄하고 감격스럽게 저의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기분 좋은 날에 부르는 노래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배웠고 지금도 노랫말을 잘 기억해서 부를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광복절에는 학교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좋은 날이라며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고 놀 때, 일본 학생들은 전쟁에 패한 슬픈 이 날을 잊지 말자’라며 강당에 모여 결의를 다진다고 했습니다. 전 교장 선생님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며 청년학도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하여 세상을 복 되고 이롭게 하라는 말씀으로 훈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대학에서 대인군자이며 배달학자였던 짐계 큰 스승으로부터 올바른 역사용어를 배웠습니다. 별생각 없이 배워서 의식 없이 이때까지 써왔던 많은 역사용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역사는 자기 나라 중심으로 기술해야 하고 자기 민족에게 의미있는 흔적을 적어야만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서로 치고받고 하는 일이 생겼을 때는 맞서서 고함을 지르게 된다. 이때 서로 하는 말이 다르다.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것을 역사용어라고 한다. 즉, 나라 사이의 전쟁에서 침탈 쪽 역사용어는 서로 부르는 이름이 일방통행으로 되어야 함이 마땅하여 조선은 임진왜란(壬辰倭亂: 임진년에 왜가 일으킨 난리)이라고 부르고, 일본은 문록전역(文祿戰役: 관백 문록년에 전쟁터에 나가서 일함)이라 얼버무렸다’라고 해달같이 밝혔습니다.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년 11월 17일, 일본이 우리의 주권을 뺏기 위해 억지와 강제로 맺은 약속) 대(對)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 을사년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맺은 서로 좋은 약속),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 1910년 8월 29일, 나라를 빼앗긴 치욕스런 날) 대 한일합방일(韓日合邦日: 한국과 일본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하나의 나라로 합친 날), 광복(光復: 나라 땅과 주권을 다시 찾음) 대 독립(獨立: 좋게 붙어 있다가 따로 떨어짐, 같이 하던 사업이나 부모 슬하에 있다가 분가할 때 독립이라 함), 국권회복기(國權回復期: 나라의 주권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시기) 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나라의 힘이 없어 일본에 강제로 점령당한 시기, 우리 겨레는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나 일본은 힘센 저들 조상이 한때 조선 땅 전부를 차지했었다는 기분 좋은 소리임), 부왜역적(附倭逆賊: 왜에 빌붙어서 나라를 해롭게 한 도적) 대 친일파(親日派: 일본과 친밀하게 지내는 무리, 親이란 한자는 ‘가깝다’라는 좋은 의미의 말임, 일본과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냐고 대들면 할 말이 없음)』앞 문단 『』에서 예를 든 앞쪽 말은 우리 겨레가 자긍심을 가지고 써야 할 올바른 역사용어이고, 대비 되는 뒤쪽 말은 일본말 백과사전 광사원에 실려있는 것을 부왜사학자들이 정체성을 잃고는 그대로 베껴서 우리말 사전에 슬그머니 끼워 넣었던 쓰레기 말입니다. 쓰레기는 폐기 처분해야 마땅합니다. 임인년(2022년) 올해는 광복 77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77은 행운의 숫자인 7이 겹쳐서 좋고, 사람 나이로 치면 오래 살아서 기쁘다는 뜻에서 기쁠 희(喜)자를 써서 희수(喜壽)라고도 합니다. 8월 15일 광복절 기쁜 날에 기쁨이 배가되는 느낌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나라 중심으로 기술해야 하고 우리 민족에게 의미 있는 흔적을 적어야 합니다. 올바른 역사용어를 제대로 배워서 부려 쓰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라와 겨레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되어 일생을 떳떳하게 마치게 될 것입니다. 광복 77주년 을 맞이하여 함양중학 건아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새겨듣고, 우리 배달겨레 정서에 합당한 올바른 역사용어를 배우고 익혀 널리 사용하여 참 선비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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