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기억 중에 아침마다 마당과 대문 밖 골목을 비질하던 아버지 모습이 있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드나들어야지” 손님을 맞는 마음이,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이 비질에 녹아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일을 10년간 해온 박동현씨의 마음도 그랬나보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함양군 안의면으로 오는 초입에 작은 공원이 있다. 만들어놓기만 하고 관리를 하지 않아 풀이 무성했다. 새로 부임한 면장님을 만난 자리에서 공원 가꾸는 말을 꺼낸 박동현씨는 그때부터 이 일이 그의 몫이 됐다. 그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공원에 예치기 작업을 하고 나무를 다듬는다. 5월말에서 6월초, 7월 말, 9월 말, 1년 중 세 번은 해야 하는 일이다. 나무를 다듬고 잡초를 깎으려면 혼자서 4~5시간은 족히 걸린다. 새벽 일찍 또는 퇴근하고 난 뒤 그는 시간이 되는대로 이곳 공원을 말끔히 정돈해 놓고 사라진다. “처음엔 직원들과 함께 하려고 했는데 막상 직원들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면장님과 한 약속도 있고 해서 시간을 쪼개 했던 것이 지금까지 하게 됐네요” 계기는 이렇지만 박동현씨를 움직인 것은 오래 전 그날의 기억 때문이다. 지금은 안의 광풍루에 옮겨져 있는 안의 현감의 공덕비, 선정비가 이전에는 오리숲 부근에 있었다. 유적탐사를 온 스승과 제자는 무릎높이까지 올라 온 풀숲에서 공덕비를 보고 있었다. 그 곁을 지나던 박동현씨는 “귀중한 곳을 관리하지 않고 이렇게 풀이 무성하니 당치도 않을 일이다”는 교수님의 말을 무심결에 듣게 됐다. 그 때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그 말이 그의 뒤통수를 쳤다. “시작할 땐, 한번만, 일 년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해요. 그 때 첫 마음을 기억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안의면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는 박동현씨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기백산과 남덕유산 두 높은 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지나는 안의. 그는 물만 깨끗하게 보존해도 안의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깨끗한 마을, 안의. 그래서 박동현씨는 안의를 깨끗하게 단장하는 일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잡초가 무성한 도로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포클레인, 트럭까지 동원시켜 말끔히 치운다. 관광지에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를 보면 차를 세우고 쓰레기봉투에 담아 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얼마 전 불이 난 타이어공장에는 3일간 출근도장을 찍으며 화재현장 정리에 참여했다. 용추사 입구 계곡 옆에 멋들어지게 서 있는 소나무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자 돌을 쌓아 사람들 손길을 막고 훼손을 방지했다. 돈을 들여 새로운 건물을 짓고 변화를 주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말하는 박동현씨. “조경은 예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보다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꽃과 나무, 돌이 조화를 이루면 아름답죠. 조화로우면 눈에 거슬리지 않아요” 서상IC에서 안의 오는 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마을곳곳 입구에 있는 노송만 가꿔도 얼마나 멋질까. 광풍루도 잘 가꾸고 포토존을 만들면 인생샷 성지가 될텐데. 안의를 사랑하는 만큼 그의 눈에는 온통 안의가 가득 차 있다. 박동현씨는 자신이 해 온 일이 거창하지도,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라 한다. “풀이 자라 있는 걸 보면 짜증스럽고 풀을 깎아놓으면 기분이 좋아요. 많은 사람이 보든 안보든 내 만족이죠” 작은 일이지만 할 수 있기에 하는 것일 뿐이라고. 깨끗한 공원을 보면 행복하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박동현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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