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를 그리는 화가가 있는데 이 사람이 그림은 그런대로 괜찮게 그립니다. 그런데 욕심이 너무 많은 게 흠이네요. 절제를 몰라 그림을 망칩니다. 난을 치고 나비나 한두 마리 그려 넣으면 될 것을 그 옆에 매화를 그려 넣습니다. 그리고 빈자리에 고양이를 한 마리 그려 넣고 검정개도 두 마리 그립니다. 여기에다 국화도 그려 넣습니다. 여백이 하나도 없는 바보 같은 그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름을 밝힐 수없는 지리산 엄천골에 사는 어느 농부가 화단에 꽃나무를 심는데 욕심 많은 화가랑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크로커스 구근을 심고 상사화도 심고 붓꽃도 심고 작약. 해바라기, 장미, 기생초, 리빙스턴데이지, 사피니아, 마가렛, 보리지, 라일락 .... 등등 끝도 없이 심습니다. 절제를 모르는 화가가 그린 여백 없는 그림이랑 다를 바가 없네요. 손바닥만큼의 흙만 보이면 화초를 심습니다. 그래서 화초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화단은 항상 혼란스럽습니다. 이 혼란스런 전쟁에서 누가 이기겠습니까? 가시가 있는 장미일까요? 군락으로 핀 마가렛 일까요? 아닙니다. 최후의 승자는 이도 저도 아닌 잡초입니다. 중부지방에는 폭우가 일주일째 쏟아졌다는데 여기 지리산 자락에는 비가 오지 않고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낮의 기온이 34도까지 예사로 올라가네요. 아침 먹고 화단의 꽃나무들이 안녕하신지 눈 맞춤 하러 마당에 나왔는데 아무도 안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심하고 호미를 들고 (잡초 포함) 화초를 솎아주었습니다. 화단에 꽃나무를 심을 때는 즐겁지만 한여름에 호미질 할 때는 땀나고 허리 아픕니다. 잡초를 뽑는데 마당 냥이 모시가 장난친다고 잡초 뽑느라 움직이는 내 손을 공격합니다. (야 임마~ 저리가 쫌~) 땀은 삐질삐질 나고 허리는 아픈데 도무지 고양이랑 장난이나 치고 있을 상황은 아니지만 모시는 이 재미있는 놀이를 그만 둘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지난 가을 산책길에서 만난 2개월짜리 길냥이 모시가 이제 한 살이 다 되어가네요. 사냥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쥐도 잡고 새도 잡고 이제는 잡초 뽑는 농부의 손도 잡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캣치 캐치. 군락으로 화단을 가득 채웠던 리빙스턴 데이지와 마가렛을 모두 걷어내었습니다. 씨앗 한 봉지씩 지난봄에 파종하였는데 미세씨앗이 모두 발아되는 바람에 버리지 못하고 땅만 보이면 옮겨 심었던 것입니다. 한동안 꽃은 예쁘게 피었지만 이제 끝물이고 불볕더위 아래 헐떡거리는 모습이 힘겨워 보여 그동안 고마웠네 하고 모두 걷어내었습니다. 오스테오 펠멈도 보리지도 모두 걷어내고 해바라기, 접시꽃 벌레 먹고 병든 잎을 정리해주고 나니 화단이 훤해졌습니다. 바람들어갈 틈도 없이 빽빽했던 화단의 반이 비었습니다. 아무려면 이정도의 여백은 있어야 꽃나무들이 숨을 쉬지요. 이제는 가을 국화 모종을 옮겨야 할 때입니다. 지난봄부터 국화를 삽목 했는데 백 개가 넘는 삽목가지가 모두 뿌리를 내려 정식을 할 때입니다. 심을 자리는 이제 막 끝물 화초들을 걷어낸 그 자리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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