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축대 공사할 때 사라졌던 장미가 바위 틈새에서 올라오더니 꽃까지 피웠습니다. 일부러 심을 수도 없는 험한 곳에서 사라졌던 장미가 나타나 생존신고를 해주니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기쁩니다. 지난 가을 포크레인 기사에게 꽃나무는 살려달라고 부탁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런 건 주인이 직접 챙겨야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사 중에 덤불장미와 관목 장미 열 그루 정도가 사라졌고 20년 키운 능소화, 보리수, 홍매화 등등 아까운 나무를 많이 잃었습니다. 내가 제일 아끼는 금목서도 두 그루 있었는데 한 그루는 죽고 한 그루만 겨우 살렸네요. 금목서는 만리향이라 꽃이 피면 지나가는 사람이 향기에 이끌려 안마당까지 들어오곤 했답니다. 샤넬5 향수 원료로 사용되었다는 귀한 나무지요. 이런 공사는 시간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했어야 하는 건데 바위가 산더미처럼 쌓인 마당을 장비 기사에게 전적으로 맡겨놓고 나는 곶감 깎을 감 수확하러 다니느라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알아서 해 달라고 했는데 알아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와서 꽃나무를 잘 알지 못하는 장비기사를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감 수확에만 정신이 팔려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내 잘못입니다. 사라진 꽃나무를 다시 보기 위해 올 봄에 장미 스무 그루를 새로 심었습니다. 그리고 능소화, 등수국 세 그루, 홍매화, 수양매화, 능수벚나무, 해당화, 무화과, 다래, 포도 등등 꽃나무와 과수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텃밭에는 감자, 딸기, 수박, 복수박, 참외, 방울토마토, 토마토, 가지, 고추, 호박, 오이, 상추, 들깨, 비트 등등 야채들을 심고 일년초 꽃씨도 열 몇 종 파종하여 화단을 가꾸고 있습니다. 봄여름 가을 서리 내릴 때까지 이런 저런 꽃들이 피고 지겠네요. 유럽 마을 담벼락을 덮고 있는 큰 나무가 등수국이라고 합니다. 새로 쌓은 축대를 등수국으로 덮어보려고 세 그루 심었습니다. 그리고 장미에 관심을 가져보니 요즘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품종 장미가 많이 나왔네요. 인기 있는 데이비드 오스틴사의 영국장미는 아직 한 그루도 들이지 못했는데 이 영국장미들은 한마디로 신세계입니다. 멋진 신세계로 가볼지 아님 먼저 심은 결코 적지 않은 장미나 잘 키우며 소박하게 만족해야할지 생각이 많습니다. 장마가 코앞이라 일단 감자부터 캐야겠습니다. 하지가 지나니 감자 잎이 모두 시들고 있습니다. 지난 봄 가뭄으로 감자가 자라지를 못해 아직 캐지 않고 있었는데 잎이 시들고 있으니 더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장마 전에 캐서 작은 건 간장 조림이라도 해먹어야겠습니다. 20년 전 집 짓고 처음 심은 장미는 함양장날 난장에서 구입한 것이었는데 병충해에 강해서 방제가 필요 없어 좋습니다. 한 그루는 국민장미라고도 불리는 분홍 홑꽃이 풍성하게 피는 안젤라이고 다른 두 그루는 이름을 모릅니다. 오래 전에 난장에서 구입한 거라 이름을 알 수가 없네요. 그냥 그럴 듯한 이름을 지어주고 이름을 불러줄까 합니다. 오렌지 핑크색의 향기로운 덩굴장미는 ‘자르뎅 드 수리’라고 하고, 노란색 덩굴장미는 ‘브루크너’라고 이름 짓습니다.왜 이렇게 지었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웃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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