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로얄바카라 덩굴장미 아치 아래로 지나가는데 누가 내 머리를 살짝 만지는 게 느껴졌답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는데 아무 것도 안 보였어요. 뭐지? 숨어서 무궁동으로 노래하고 있는 꾀꼬리가 잠시 내 머리 위에 앉았었나? 아닌데... 순간 경이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 걸까?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내려와 나의 머리를 살짝 만져준 걸까? 내가 잠이 덜 깬 것도 아닌데 참으로 신기하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경건한 마음이 되어 뒷마당 텃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난 며칠 은혜로운 비가 내려 텃밭의 수박과 참외는 하루가 다르게 굵어지고 있고 방울토마토와 토마토 열매도 색이 나기 시작합니다. 보름만 더 기다리면 달콤한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봄 가뭄에 물을 주느라 힘이 들었지만 결국 이 과일들을 잘 길러내었다는 자부심에 뿌듯합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에 텃밭에서 내려와 다시 장미아치 아래를 지나는데 또 다시 누가 내 머리를 건드리는 것이 느껴져 (살짝 전율하며) 뭐지? 하며 손을 휘저으니 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미줄이 만져집니다. 장미 아치에서 횡으로 이어진 한 줄 탱탱한 거미줄이 내 머리를 건드린 것이네요. 이른 아침 신비롭고 영적인 체험을 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부끄럽게도 그냥 길게 늘어진 거미줄 한 가닥에 날벌레 대신 내가 걸린 것이 팩트였네요.이른 아침 눈을 뜨면 나는 꽃나무들과 하나씩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뉴월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장미는 하나 둘 지고 있고, 한련화, 사피니아, 마가렛, 채송화, 데이지같은 키 작은 꽃들이 동창회라도 하듯 화단을 채우고 있습니다. 키 큰 해바라기와 접시꽃은 이제 막 첫 번째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올해는 정원 가꾸기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 앞마당 뒷마당 축대공사를 하며 꽃나무가 많이 없어졌는데 마당은 오히려 넓어져 올 봄에 새로 꽃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이런 저런 장미만 해도 18주나 심었는데 이제는 더 심은 자리도 없는데 새로 들이고 싶은 장미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더 이상 장미는 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장미는 그만 심고 로즈 가드너들이 특별히 자랑하고 추천하는 로즈나 몇 주 심어볼까 합니다. 심을 자리는 없지만 어떻게든 해봐야겠지요.유월 중순엔 뻐꾸기 소리가 뜸하고 꾀꼬리 소리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곶감 덕장에 둥지를 튼 찌르레기는 이제 새끼들을 다 키웠습니다. 곶감 덕장 박공에 해마다 찌르레기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데 새끼가 한창 자랄 때는 새똥이 떨어져 바닥이 새까맣게 되어 지저분합니다. 매년 이맘 때 입주 퇴거가 반복되고 있는데 바닥에 새똥 치우기가 힘들어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새똥 받이를 만들어주든지 둥지를 막고 근처 감나무에 새집을 만들어 주던지 해야겠습니다.오월 유월은 장미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뻐꾸기와 꾀꼬리 노래들으며 즐거웠습니다. 주말에는 아내와 정원에 잡초를 뽑고 텃밭 채소에 물을 주느라 땀을 흘립니다. 이제 장마가 시작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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