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말이야, 함양사람보다 함양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야. 함양에 와서 40년 넘게 살았는데 지금도 함양이 참 좋아”
‘귀농’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귀농한 ‘함양의 귀농1세대’ 임영빈(82)씨. 임영빈씨는 부산에 살면서 1975년 함양군 백전면 오매실 마을에 땅 20여만평을 샀다. 서울에 계시던 어머니와 할머니가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곳에서 생활하여 자연과 가깝고 공기 좋은 이곳에 모셨다. 주말마다 부산에서 함양으로 왔던 그는 3년 후 1978년 오매실 마을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는 처음에 젖소 30여 마리를 사육했다가 우유파동으로 2년 만에 정리했다. 이후에는 한우도 키우고 청둥오리 2000수, 토종닭 1000수 등 가축을 키워봤다. 하지만 생명을 기르는 건 쉽지 않았다. 집 근처 밤 산에서 300포대나 되는 밤을 주워 납품도 했지만 항공방제가 시작되면서 더 이상 밤을 수확하지 않았다. “여기 와서 실패한 게 더 많지. 전부 실패하고 지금까지 하는 건 절임배추 밖에 없으니 이것만 성공했다 해야 하나. 근데 지나간 일들이 참 재미있어. 못하는 경운기도 몰아보고. 주말마다 승용차로 이 골짜기까지 오면서 비포장도로에 차가 망가져도 달려오고 싶은 곳이었어”
백전면은 해발 300~500미터 이상 되는 준고랭지다. 일교차가 큰 백전에서 생산되는 오미자, 복분자, 곶감, 사과 등은 당도가 높고 품질도 우수하다. 이것저것 농사도 지어봤지만 판로에 막히고 어려움을 겪었던 임영빈씨는 농업교육을 받으면서 친환경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배추농사를 지어 절임배추를 지인에게 나눠주었더니 맛있다고 해 일을 벌였다. 2003년, 절임배추를 제일 먼저 시작해 보급했다. 그렇게 백전에 절임배추가 확산됐다.
연간 2만포기의 배추를 심어 매년 350여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절임배추는 20년째 지속하는 사업이다. 20일만에 이뤄지는 절임배추는 많이 하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해 생산을 늘리지 못한다. “내 꿈은 절임배추와 배추김치를 생산해 연간 공급하는 거지. 김치는 고춧가루가 맛을 좌우할 만큼 중요해요. 고춧가루와 배추는 꼭 백전에서 생산하고 마을 사람들과 김치를 담가판매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임영빈씨는 지리산약초마을 촌장으로 불린다. 그는 2010년부터 전국 농업기술자협회 및 코엑스에서 시행하는 귀농귀촌박람회에서 특강을 하면서 오매실 마을을 귀촌마을로 조성하였다. 20여 가구가 귀농하여 두레정신으로 협업과 상생하며 공동체 생활을 실천했다. “농업은 혼자나 부부로만 하기 버겁고 재미가 없어요. 서너 가구가 함께 협동하고 친환경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면 신뢰받는 농업인으로 인정받아 안정된 수입과 지속적인 영농생활을 지속할 것이라고 믿어요” 한 가족이 아니라 귀촌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이웃과 함께 도와가며 농사짓고 살아가는 곳, 고정관념을 깨고 젊은 귀농인이 정착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여긴 임영빈씨는 귀농귀촌인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오막살이 집 한 채 뿐이던 산골마을, 아무것도 없던 곳에 땅을 일구고 집을 짓고 사람들을 모아 마을을 만들었던 임영빈씨. 그는 이제 일을 벌이기보다 일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는다고 했다. “이곳은 말이지 못살겠다고 나간 사람 없고 살면서 아픈 병이 든 사람도 없어. 아팠던 사람도 건강해진 곳이지. 아직 내가 건강하고 주위에서 나를 촌장이라 불러 주지만 나를 이어 누군가가 이 일을 평생하면서 어울리고 상생하며 살았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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