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장미 6그루를 옮겨 심었다. 그런데 6그루 장미는 애초에 심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장미를 심기에 적당한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거지(억지)로 해가 잘 안 드는 열악한 장소에 심은 그 장미들은 세월이 흘렀지만 대부분 바람직한 모습으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고 나는 마음 한구석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심을 자리도 없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장미를 주문했지? 남의 정원에 화려하게 핀 장미를 보고 욕심이 나서 덜컥 주문해놓고는 마땅한 자리가 없어 고민하다 해가 잘 안 드는 곳이지만 어쩔 수 없이 심었다. 그러다가 다행히 장미를 심기 좋은 자리가 생겼다. 지난 가을 집 주변에 축대를 쌓아 마당을 넓히면서 해가 잘 들고 장미가 잘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나는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한 장미에게 멋진 선물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삽을 들었다. 이식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한 그루는 죽었다.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십년 묵은 독일 덩굴장미(함부르크 피닉스)였는데 음달 건물 벽에 바짝 붙여 심어져 있어서 제대로 파낼 수가 없었다. 삽질을 하는 과정에 뿌리가 대부분 손상되었다. 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굵고 실한 가지가 모두 마르고 나니 안타까웠다. 물을 부지런히 주고 정성을 들였지만 소용없었다. 가지가 하나씩 시들더니 결국 마지막 가지가 말라버렸다. 포기하고 그 자리에 종이꽃 모종을 심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종이꽃 모종 사이로 죽은 줄 알았던 덩굴장미 함부르크 피닉스가 땅 속에서 새로운 순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너무 기뻐서 소리라도 막 지르고 싶었다. 빨간 새순이 올라오는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 경이롭고 아름다운지... 비록 미미한 새순이지만 그 속에는 담벼락을 가득 채울 꽃이 백만 송이가 들어있는 것이다. 나머지 다섯 그루도 이사한 새로운 땅에서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있고 작은 꽃망울도 조금씩 달고 있다. 오늘 우리 집 정원에 장미향이 넘친다. 아마 올해 장미가 가장 많이 피는 날이 바로 오늘이 아닐 까 싶다. 창을 열면 장미 향기가 방안에 가득 들어온다. 20년 전 집 짓고 바로 심은 장미 세 그루가 절정이다. 시골 난장에서 이름도 모르고 산 것들인데 화형도 큼직하고 예쁘고 무엇보다 향기가 대단하다. 오늘 같은 날은 특별히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겨둘 만하다는 생각에 장독 뚜껑 수반에 정원에 핀 장미를 한 송이씩 띄웠다. 정원수로 장미만한 게 없지 싶다. 장미는 한번 심어놓으면 매년 알아서 꽃을 피워주고 개화시기도 길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아마 장미가 없는 정원은 없을 것이다. 정원에 장미가 피면 삶에 색채와 향기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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