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서 필자가 사는 유림에는 농부들의 분주한 발걸음과 농기계 소리로 시끄럽다. 양파의 마지막 성장을 위한 농부들의 분주한 손길, 일모작 모심기 준비를 위해 논을 갈고, 물을 대는 농부들의 분주한 발걸음과 분주한 손놀림. 농부들의 분주함이 땅의 생명력을 더욱 재촉한다. 이런 상황에 필자도 최근 교회 공사로 분주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 어제는 자재를 주문해 놓고 가져오기 위해 이웃 주민의 차량을 빌리게 되었다. 자재를 가지고 오기위해 동행 했다. 비슷한 시기에 유림으로 이사와 필자는 유림교회 목사로, 이분은 농부로 각각 정착했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타지에서 만나 때로는 말벗으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도와주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다. 어제는 내 일이 급하다 보니 바쁜 농번기에도 염치없이 자재의 이송과 마무리 작업까지 함께 했다. 여러 가지로 미안한 마음에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얼마 전 KBS “한국인의 밥상”에서 이분들의 인생 도전기를 촬영해갔고, 이 날이 방송되는 날이었다. 마침 저녁 약속 시간이 방송시간과 겹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스마트 폰으로 함께 방송을 시청했다. 조금은 늦은 저녁이어서 그런지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고, 식당 사장님까지 오셔서 함께 방송을 보며 축하해 주셨다. 어제 방송의 전체 주제는 ‘제2의 인생(새로운 출발)’이었다. 귀농, 귀어로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는 잘 모르겠고, 이분들의 영상은 정말 진솔하게 유림에 귀농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잘 담고 있었다. 익숙한 들판의 풍경과 낯익은 얼굴이 TV에서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신기한 것은,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 지금 나와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식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이 끝나갈 무렵 두 분의 전화벨이 번갈아 가며 울리기 시작했다. 방송을 본 지인들의 안부 전화였다. 또 어떤 분은 일면식도 없지만, 방송을 보시고 아직 캐지도 않은 양파를 주문까지 하셨다. 식사 내내 두 부부의 전화와 SNS는 난리가 났다. 귀농해 4년째 양파 농사를 짓고 있는 이분들의 모습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이웃들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 많은 양의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고개가 저어진다. 한 참 바쁠 때는 새벽에 나가 자정이 되어 집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분들뿐이겠는가?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삶은 모두 동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수고해 지은 농민들의 농산물이 정당한 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과잉생산으로, 때로는 흉작으로, 때로는 유통구조의 모순 때문에, 때로는 외국의 수입 농산물 때문에 등등. 사람이 언제 행복을 느낄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내 삶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있을 때’일 것이다. 감사한 것은 이분들이 흘린 땀방울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귀농해 묵묵히 자기 삶을 살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가끔 지켜보는 필자도 덩달아 행복할 때가 있다. 이번 방송이 이분들의 삶에 조그마한 위안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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