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긴 여정을 통해 양자역학의 정통 이론이라 할 수 있는 코펜하겐 해석에 관해 성립 과정과 의미, 반론, 검증에 관해 살펴보았다. 분명 그 기이함에도 불구하고 코펜하겐 해석은 21세기 현재까지도 미시 세계와 연관된 많은 실험과 현상들을 정확히 설명하거나 예측하는 것이 사실이다. 과학 이론이 이처럼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적어도 다음 과학혁명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완벽한 이론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럼에도 코펜하겐 해석에 관해서는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대다수 현장의 물리학자들에게 있어서 해석의 타당성 여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측정이나 관측 장비에 나타나는 여러 결과치들은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한 고민 없이도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측정 이전의 본질이나 측정 행위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코펜하겐 해석이 더 이상 고민의 여지가 없는 올바른 이론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특히 양자역학이 20세기에 이룩한 찬란한 기술문명을 생각해보면 더 이상 의심의 눈초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측정 이전의 대상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중첩된 확률적 존재로만 기술하고 측정을 통해 나타난 결과들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으로 양자역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가장 궁금한 것은 신의 비밀이라고 이야기했다.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던 아인슈타인에게 코펜하겐 해석은 놀라운 창조력에도 불구하고 신의 비밀로 향하는 올바른 길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일갈한 것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기발한 사고실험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벨의 부등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검증 실험들은 여전히 코펜하겐 해석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분명 그 해석이 절대적으로 옳다기보다는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문제들이 자연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증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양자역학의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과 벨은 측정과 무관하게 대상의 실재성에 대해 알 수 있는 ‘숨은 변수’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란 물리학자 역시 1950년대에 숨은 변수 이론을 기초로 한 양자역학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이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휴 에버렛 3세(Hugh Everett III)는 측정 이전의 중첩 상태는 단지 확률적으로 기술되는 가능성만의 세계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세계임을 주장했다. 즉 여러 세계 중에서 측정을 통해 어느 하나만 관찰자에게 드러나는 것이며 여전히 선택되지 않은 세계도 존재하고 있다는 다소 기상천외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른바 ‘다세계 해석’이라는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이 계속 되고 있으며 나름대로 각자의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본격적인 물리학의 핫이슈라기보다 철학과 과학을 동시에 연구하는 소수 학자들의 관심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물론 기존의 코펜하겐 해석을 기반으로 한 양자역학의 연구를 통해서도 이후로 무궁무진한 결과물들이 생산될 것이며 우리의 기술 문명 역시 더욱 진보할 것이다. 나아가 어떤 새로운 세상이 닥쳐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상식을 뒤엎는 사고를 통해 과학혁명을 이끌어낸 천재성에도 있지만 신의 비밀에 접근하기 위해 근본적인 문제들을 포기하지 않고 파고들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그는 사실 양자역학이 지배해버린 물리학에서 그의 위상만큼의 기여를 하지 못했으며 노년에는 뒷방 노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물리학 너머에까지 깊은 사색과 탐구에 몰두했고 성공하지 못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을 도전하는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진정한 천재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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