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모든 만물이 활짝 피어나는 싱그러운 계절이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어서 더 분주하고 바쁜 달이기도 하다. 용인에 손주가 둘이 있는 필자는 아침 일찍 며느리에게 용돈을 보내 주면서 고생한다는 말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에게 아버지와 할아버지 노릇(?)을 대신했다. 그리고 돌아보니 나에게도 돌봐드려야 할 분이 계셨다. 어린이가 아닌 어르니이신 41년생 우리 엄마였다.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는 어머니께서도 어린이날을 은근히 기다리신 모양이었다. 모처럼 바람이라도 쐬고 싶다고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 휠체어와 워커를 차에 싣고 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생선회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 진해에 있는 D회센터를 찾아갔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 간신히 자리 하나를 얻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좋았다. 2층 창가에 앉아서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제일 작은 모듬회 한 접시를 시켰다. 유난히 해물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 멍게며 산낙지며 통문어숙회와 피조개숙회까지 주문했다. 저렴한 가격에 이것저것 골고루 주문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나온 매운탕은 국물 몇 숟가락 뜨고 말았지만, 엄마와 모처럼만에 가진 외식으로 너무나 행복했다. 외출이라야 하루 종일 차를 타고 다닌 것밖엔 없었지만, 마냥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피곤한 줄 모르고 운전을 했다. 어린이날을 ‘어르니날’로 보낸 하루 동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연세가 여든 중반이 되어도 마냥 어린 아이와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불과 20여년 후의 내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착잡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외출할 때면 재촉하는 불효자와 꾸물거리는 어머니의 신경전부터 시작이 된다. 간단한 간식이나 음료부터 어머니에게 필요한 위생용품까지 챙겨야 하니 손이 가야 하는 구석이 많기 마련이다. 인공 고관절 수술과 대퇴부 골절 수술까지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수술을 두 차례나 하는 동안 젊고 예쁘고 똑똑하셨던 우리 엄마가 이제는 진짜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몸이 둔해지고 보행이 더뎌지니 정신까지 어려지신 것일까? 이런저런 설명 없이 무조건 끌고(?) 다녀도 엄마는 불평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는 뚜껑을 열고 빨아먹는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신기해 하셨다. 손이 시려서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비닐 용기를 이리저리 주물러가며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드시는 엄마가 룸 밀러에 들어왔다. 파마를 하신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얼마 전에 미용실에서 커트를 한 덕분에 머리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평생 한 번도 염색을 하지 않으셨지만, 아직도 머리가 까매서 보기 좋았다. 머리숱도 많은 편이라 지금 시집을 가셔도 좋을 만큼 우리 엄마는 미인이시다. 88년 서울 올림픽의 열기가 뜨거울 무렵 아버지는 마흔 여섯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필자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아버지의 죽음도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에 가려서 무덤덤하게 여겨졌었다. 그리고 벌써 34년, 그 긴 세월을 우리 엄마는 줄곧 혼자 살아오셨다. 밭에서 기른 열무며 무 배추를 장에다 내다 파시는 것부터 화장품 장사나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일까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손을 놓지 않으셨던 분이시다. 캐리어에 짐을 싣고 수십 리 길을 걸으시며 화장품을 파실 때에는 대부분 곡물로 화장품 값을 대신 받아오신 적이 많으셨다. 그래서 늘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셔야 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 운전면허를 따셨고, 경미한 사고가 몇 번 있긴 했지만, 작은 오토바이가 엄마의 발을 대신해서 씽씽 잘 달려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는 오토바이가 효자였던 것 같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이동권이 아니겠는가? 내 맘대로 갈 수 있고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있어야 하는데, 몸이 불편해서 움직일 수 없게 되면 그것만큼 불편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특별한 병이 없더라도 움직이지 못하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두 아들을 키우는 동안 아이들이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수도 없이 넘어지는 것을 일으켜 세워주고 손을 잡아서 걸음마를 도와주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이제는 엄마의 손을 잡아드려야 하고, 엄마를 부축해서 도와드려야 하는데, 발을 질질 끌면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시는 엄마가 답답하다고 타박하면서 똑바로 못 걷는다고 야단(?)을 치는 못된 불효자가 된 내가 한없이 미웠다. 어린이 못지않게 예쁘게 봐 드려야 할 어르니이신 우리 엄마. 우리 엄마에게 5월 5일은 어린이날이 아닌 어르니날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서 정식으로 어른 대접을 해 드려야 하는 이중과세를 기꺼이 감수하면서 어린이에서 어르니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나도 조금씩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날을 어르니날로 보내면서 나처럼 조금씩 어르니가 되어가고 있는 필자 또래의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린이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서 어린이날이 어린이날 구실을 못하게 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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