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앞마당 화단과 텃밭에 심은 작물에 물 좀 주고 나면 반나절이 휙 지나가고, 감나무 과수원에 가서 덤불 좀 정리하고 새로 심은 고종시 묘목 한 번씩 눈 맞춤하고 나니 또 반나절이 휙 지나간다. 하긴 엊그제가 4월인가 싶더니 어느새 한 달이 지나 오월이다. 큰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며느리 될 사람을 집에 데리고 와서 결혼 날짜까지 잡은 게 일 년전 이었다. 흠 아직 일 년(긴 세월) 남아있군... 했는데 어느새 일 년(짧은 세월)이 지나 낼 모레가 결혼식이다. 내가 결혼하는 게 아니고 아들이 결혼하는데 삼 십여 년 전 내가 결혼할 때보다 가슴이 더 설렌다. 엊그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머리를 깎는데 이발관이나 미용실에 가면 그냥 짧게 해 주세요~ 하고 한마디 한다. 그런데 아들 결혼을 앞두고 두 달 만에 머리를 깎는다. 혼주가 머리가 너무 짧으면 분위기에 안 맞을 것 같아 두어 달 머리를 기른 뒤 아내의 권유대로 퍼머를 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하는 퍼머다. 여섯 살 때였던가? 어머니 치마잡고 미용실에 가서 퍼머(빠마)를 했는데 그 때는 비록 어린 아이였지만 남자 아이가 미용실에 가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머리가 뽀글뽀글한 빠마라는 걸 하고 나니 어찌나 부끄럽던지 한동안 밖에 나가지를 못했다. (세월이 정말 빠르다. 퍼머 딱 두 번 하는데 반백년이 휘리릭 지나고 또 8년이 휘익 사라졌다) 큰 아들 결혼식 때 단상에서 부모 축사를 해야겠기에 십 년만인지 이 십년 만인지 양복도 한 벌 사고 넥타이도 빨간 색으로 하나 고르고 머리도 퍼머로 했다. 사실 수년 전 병원에서 주는 전립선 약을 한 2년 먹고 나서 부터는 부작용 때문인지 눈에 띄게 머리가 빠져 은근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뒷모습 사진을 보면 머리숱이 없어 보름달이 보이는데 이번에 머리를 두 달 기르고 퍼머를 하고나니 달덩이가 안 보인다.(안 보일 것이다) 미용실에서 나올 때만 해도 내 인생에 퍼머는 이번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니 어쩌면 퍼머가 나에게 맞는 게 아닌 가하는 생각도 든다. 여태 하던 대로 그냥 짧게 깎는 것과 비용만 같다면 퍼머도 좋겠지만 작은 아들 결혼하게 되면 그 때나 한 번 더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머리 가꿀 돈으로 나는 정원에 꽃나무를 심고 싶다) 식을 서울에서 하기 때문에 하루 전날 고속버스를 예약했다. 마침 그날이 경복궁 야간 개장을 하는 날이라 사전 예약을 하려고 시도했는데 결재 단계에서 입장권이 마감되는 바람에 실패했다. 새 양복 입고 퍼머까지 하고 경복궁에 가서 아내랑 야밤에 데이트를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